[책마을] 쏙 들어오는 카피…알고 보니 밤샘회의 결정체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가 회의에 대해서 명확하게 아는 것은 있다. 회의만큼 기적적인 순간은 없다는 것.회의실에 들어올 때는 빈손일지라도 나갈 때는 빈손일 수 없다는 것.회의만 잘 해도 일은 반 이상으로 줄어든다는 것.'

《우리 회의나 할까?》는 국내 최대 독립 광고 대행사 'TBWA코리아'의 회의록이다. '진심이 짓는다''엑스캔버스하다''생활의 중심:현대생활백서''대림e편한세상' 등 친숙한 카피를 만들어낸 이 회사의 7년차 카피라이터 김민철 씨가 2005년부터 수첩에 적은 회의실 풍경이다. 총 네 편의 광고 프로젝트마다 온갖 카피들의 생존경쟁으로 치열했던 회의 장면을 모아 실감나게 재구성했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프로젝트,피 말리는 카피 전쟁과 연이은 밤샘 작업,모델 섭외와 막노동 끝에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끝내고 광고가 방송에 나오는 순간까지 누가 무슨 생각을 하고,무슨 말을 했으며,모두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등의 카피로 유명한 광고계의 거물 박웅현 씨가 주관하는 TBWA코리아 회의실 풍경은 오케스트라의 연습실을 연상시킨다.

단 한 줄의 카피를 위해 고심하는 카피라이터,포스터 한 획을 옮기느라 밤을 새우는 아트디렉터,머릿속 생각들을 구현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제작팀원들까지 흩어져 있던 아이디어가 합쳐지면서 새로운 결과물로 거듭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그 과정엔 7대 원칙이 있다. 회의에 지각은 없다,아이디어 없이 들어오는 것은 무죄,맑은 머리 없이 들어오는 것은 유죄,인턴의 아이디어에도 가능성의 씨앗은 숨어 있다,비판과 논쟁과 토론만이 회의를 회의답게 만든다,회의실 안에서는 누가 말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말했느냐의 문제다,아무리 긴 회의도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회의실에서 나갈 땐 할 일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저자는 "회의록을 쓰는 동안 나는 성장했고,회의록도 성장했다"고 말한다. 도대체 회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답해하는 팀장,회의를 왜 하는지 지겨워하는 팀원 등 '회의 회의론자'들에게 작은 돌파구가 될 것 같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