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의 돔에는 전망대가 있다. 독일은 통일 후 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의 공격으로 부서진 국회의사당을 재건축하기로 하고 공모전을 열었다. 영국 건축가인 노먼 포스터가 선정됐다.

돔은 원래 종교나 정치적 권력을 상징하기 위한 건축적 요소였다. 돔을 짓기 위해선 돔 모양의 나무틀을 제작하고, 그 위에 콘크리트나 돌을 쌓아 올려야 한다. 엄청난 비용이 들고 오랜 시간이 걸려 당대 사회의 최고 권력자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건축 공간이었다.

이후 시대가 바뀌었지만 상징성은 변하지 않고 권위를 보여주는 건물에 계속 지어졌다. 최고 권력자의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밑에 있는 사람을 감시할 수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도시의 빈 공간을 시각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 펜트하우스나 호텔에서 가장 비싼 방이 제일 높은 층에 있는 이유다.

포스터는 돔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살렸다. 그러나 그 의미는 정반대로 해석했다. 국회의사당 맨 꼭대기에 있는 돔을 전망대로 만들어 그곳에 올라가는 시민들에게 베를린 시내를 내려다보는 시점을 제공했다.

이뿐만 아니라 전망대에서 아래층에 있는 국회 회의장도 내려다볼 수 있게 구성했다. 시민들이 국회의원을 감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국회의원을 국민의 발 아래 둔다는 개념을 담았다.

이를 두고 유현준 건축가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보여주는 통쾌한 건축 디자인’이라고 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우리의 국회의사당과는 다른 모습이다.
'국회의원을 국민의 발 아래 둔다'는 철학의 독일 국회 건물 [책마을]
유 건축가는 이같이 생각의 대전환을 보여주는 건축물 30개를 선정해 신간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을 펴냈다. 건축의 본질을 보여주는 건축물부터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담은 건축물까지 대륙별로 저자가 건축가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준 작품을 뽑았다.

여행을 가서 랜드마크나 유명한 건축물을 볼 때 겉모습만 보고 감탄하는 경우가 많지만 저자는 생각을 깨우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자 했다.

저자는 건축물의 구조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건축가의 생각과 시대상을 곁들여 소개하면서 이처럼 말했다. “이 건축가들은 벽, 창문, 문, 계단 등을 이용해 세상을 바꾼 혁명가들이고 대중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철학자들이다.”

이금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