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모차르트의 삶을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 스틸컷. 사진=시네마 뉴원
작곡가 모차르트의 삶을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 스틸컷. 사진=시네마 뉴원
"진노의 날, 그날이 오면 인간 세상이 모두 재로 변하리라." -모차르트 <레퀴엠> 中 '진노의 날' 가사
지구촌 곳곳이 각종 재해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은 올해 사상 최악의 홍수로 국토 3분의 1이 물에 잠기고, 1200여명의 목숨을 잃는 지옥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유럽은 5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습니다. 극심한 폭염으로 강물은 바닥을 보였고 산지에서는 대형 화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중국 양쯔강은 150년 만에 최저 수위를 기록하면서 땅이 사막처럼 갈라지는 기괴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전부 녹아내리면 해수면을 최대 3m까지 높일 수 있어 '지구 종말의 날 빙하'로도 불리는 서남극의 스웨이츠 빙하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최근 과학 저널 '네이처 지구과학'에는 스웨이츠 빙하가 현재 필사적으로 버티는 중으로 급격히 후퇴하는 변화를 겪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세계 인구의 약 40%가 바닷가로부터 100킬로미터(㎞) 이내에 거주하며 해수면 상승 위험에 노출돼 있단 점을 고려하면 거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겁니다.

세상이 끝나는 날 다가올 극심한 공포와 가슴 깊은 곳을 베는 듯한 비통함을 극적인 선율로 담아낸 모차르트의 <레퀴엠> 中 '진노의 날(Dies Irae)·눈물의 날(Lacrimosa)'을 이 시점에 조명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수억개 종의 생명이 사라지고 이제는 인간의 목숨까지 위협받는 오늘, 작품이 전하는 울림은 고통으로 울부짖는 천지(天地)의 또 다른 목소리로 다가올 것입니다. 극한의 괴로움을 내뱉는 소리에 소름이 끼치다가도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율로 심장이 아리도록 하는 음악,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레퀴엠, 죽음을 바라본 모차르트의 손에서 깨어나다

레퀴엠의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부터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현재까지도 음악 신동의 대명사로 불리듯 모차르트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천재성을 입증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워낙 재능이 뛰어났던 탓에 '신이 사랑하는, 신의 은총'이라는 의미가 담긴 '아마데우스(Amadeus)'라는 이름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작곡가로도 알려져 있죠. 세기를 뛰어넘는 음악적 재능을 갖춘 만큼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처럼 보이지만 모차르트의 실제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사진=한경DB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사진=한경DB
30세를 지날 무렵부터 모차르트는 심각한 생활고를 겪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가난의 직접적 원인이 후원이 끊긴 탓인지, 개인의 낭비 탓인지에 대해선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모차르트가 후원자인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가 죽은 뒤 줄곧 빚에 허덕였으며, 지인들에게 돈을 꿔달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것은 정설로 남아있죠. 이후 모차르트는 죽음을 앞둔 4~5년간 돈을 벌기 위해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작곡 활동에 임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역설적이게도 극심한 스트레스로 모차르트의 심신이 망가지는 사이 세기의 명작은 탄생했습니다. 고전 교향곡의 절정을 나타내는 3대 교향곡 '제39번 E장조', '제40번 G단조', '제41번 C장조(주피터)'와 4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시 판 투테', '마술피리', 세기의 걸작 '레퀴엠' 모두 모차르트의 고난에서 피어난 작품입니다. 특히 레퀴엠은 모차르트가 남긴 마지막 작품으로 죽는 순간까지 이어졌던 예술혼이 그대로 담긴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작곡 도중 모차르트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탓에 미완성 작품으로 남았으나, 그의 레퀴엠은 화성학적으로 완벽에 가까우면서도 전례 없이 찬란한 선율을 온전히 담아내 현존하는 레퀴엠 중 단연 최고의 대작으로 꼽힙니다. 모차르트는 '눈물의 날' 8번째 마디까지 작곡하고 세상을 떠났으며, 나머지에 대해서는 초안 악보와 몇 가지 지시 사항만을 남겼습니다. 이후 제자 쥐스마이어가 모차르트가 남긴 악보를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레퀴엠에 대한 모차르트의 애정은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액의 보수로 의뢰받은 작품이긴 하나 작곡 도중 자신의 목숨이 끊어질 것을 예견한 모차르트는 침대에 누워있는 순간까지 작곡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모차르트가 사망일 하루 전 레퀴엠 중 '눈물의 날'을 부르다 울음을 터뜨렸다는 일화는 음악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죽음에 대한 무한한 두려움을 짐작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모차르트는 35세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레퀴엠은 그의 추모 기념 예배에서 미완성인 채로 올려지게 됩니다.

최후의 순간 인간이 느끼는 고통스러우면서도 혼란스러운 감정과 비통하면서도 애절한 감정을 강렬한 선율로 완벽히 구현해낸 작품, 모차르트 <레퀴엠> 中 '진노의 날(Dies Irae)·눈물의 날(Lacrimosa)'. 광활한 대지가 불타고 거대한 태풍이 비바람으로 세상을 뒤흔드는 공포의 그날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음악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강렬한 선율과 휘몰아치는 음표의 향연…극한의 감정 표현

"진노의 날, 그날이 오면" 부속가 중 첫 번째 작품 '진노의 날'은 웅장한 합창과 격렬한 오케스트라의 2분음표 연주로 시작됩니다. 이때 관악기와 팀파니가 합창의 주제 선율을 포르테(f)로 함께 진행하며 긴장감을 유발하면, 현악기가 아주 빠르게 16분음표를 연주하면서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듯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트럼펫과 팀파니의 8분음표 반복 연주가 등장하며 운명의 시간을 알리면 이내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성악 성부 전체가 "다윗과 시빌의 예언에 따라 인간 세상이 모두 재로 변하리라" 가사를 단호하고도 엄중한 목소리로 내뱉으며 무거운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999년 모차르트 <레퀴엠> 中 '진노의 날'을 연주하는 모습. 사진=Deutsche Grammophon - DG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999년 모차르트 <레퀴엠> 中 '진노의 날'을 연주하는 모습. 사진=Deutsche Grammophon - DG
"천상에서 심판관이 내려올 때 인간의 두려움이 얼마나 클 것인가"
이후 현악기가 상행하는 16분음표를 아주 빠르게 연주하며 회오리로 가득 찬 혼돈 상태를 표현하면, 테너 성부와 나머지 성악 성부가 서로 엇갈리듯 선율을 반복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합니다. 이내 전체 성악 성부가 다시 하나의 거대한 선율로 합쳐지면, 이를 현악기의 하행 선율이 받아내면서 청중에게 숨이 가빠질 정도의 극적인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주선율이 재등장한 뒤에는 트럼펫과 팀파니가 사라지면서 전체 소리가 줄어드는 구간이 나타나는데, 이를 지나면 바로 베이스 성부가 홀로 등장하며 전에 없던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베이스 성부가 운명의 목소리를 형상화하듯 낮고 깊은 울림으로 퍼지면 두려움에 소리 지르며 달려가는 인간의 모습이 나머지 성악 성부를 통해 구현됩니다. 이때 첫 박 강세가 두드러지면서 도망가려는 인간이 운명에 그대로 붙잡히는 듯한 장면이 연상됩니다. 그러면 성악 성부 전체가 하나의 선율로 모이고 현악기가 날카로운 소리로 고음과 저음을 휘저으며 불편한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성악 성부가 다시 엇갈리듯 나뉘면서 긴장감을 키우면 빠른 속도로 주선율을 휘몰아치던 오케스트라 전체 악기가 단 2개의 음을 남긴 채 끝을 맺습니다.

부속가 중 여섯 번째 작품 '눈물의 날'은 흐느끼듯 작게 흐르는 바이올린의 8분음표 연주로 막을 엽니다. 인간이 서글프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주선율이 악곡 전체의 비통한 분위기를 형성하면 이내 성악 성부가 "눈물의 날, 바로 그날" 가사를 아주 조용하고도 애달픈 목소리로 내뱉습니다. "땅의 먼지로부터 일어난 심판받을 자들이 주 앞에 나아오리" 이후 8분음표로 선율이 끊기면서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향해 한 발씩 걸어가는 모습을 구현하면, 점차 선율이 상행하고 음표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애절한 감정으로 청중을 압도하는 에너지를 만들어 냅니다. "자비로 용서하소서. 자비로우신 주 예수" 전반부 악곡이 반복된 뒤 선율 연주의 크기가 줄어들면 북받치는 슬픈 감정에 울먹이는 인간의 나약한 감정이 합창을 통해 그대로 표현됩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999년 모차르트 <레퀴엠> 中 '눈물의 날'을 연주하는 모습. 사진=Deutsche Grammophon - DG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999년 모차르트 <레퀴엠> 中 '눈물의 날'을 연주하는 모습. 사진=Deutsche Grammophon - DG
이후 바셋 호른이 성악 성부의 주선율을 받아 인간을 위로하듯 메아리치면, 다시 현악기가 등장하면서 순식간에 비극적인 선율로 분위기를 전환합니다. 이때 드리우는 주선율은 처음과 달리 현악기, 금관악기, 팀파니로 장대히 연주되면서 심장이 가라앉듯 애통한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애수로 가득 찬 분위기가 조성되면 베이스 성부가 먼저 등장하고 나머지 성부가 뒤따라오는 구성으로 인간이 어둠의 세계로 억지로 끌려가는 듯한 고통의 순간이 표현됩니다. 이내 바이올린이 상행하면서 격정적 감정을 잠시 내비친 뒤 성악 성부의 "아멘"이 이어지면, 모든 악기가 마지막 숨을 내쉬듯 6박의 긴 음표를 끌면서 조용히 막을 내립니다.

폭발적인 표현력, 철저히 계산된 선율 진행으로 죽음의 순간을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담아내 청중으로 하여금 강렬한 여운을 느끼도록 한다는 모차르트의 <레퀴엠>. 세상의 끝을 보듯 하늘에서 폭풍우가 쏟아지고, 지옥과 같이 땅이 50도 이상으로 펄펄 끓으며 불길을 만드는 이상 현상이 현실이 된 오늘 음악이 전하는 감정은 그 어느 때보다 비통하게 느껴집니다. 더는 기후 위기로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이 짓밟히지 않길. 부디 신의 엄중한 심판이 내려지기 전 인간의 욕심이 더 나아가지 않고 우리의 손으로 고통받지 않을 순간을 지켜내길 간절히 바랍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