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개설한 유튜브 채널 '시[詩]스루'에 솔비 출연
이야기와 시로 소통…"감정 분출하고 새 에너지 얻는 선순환 해야"
나태주·솔비 "시는 마음의 빨래…'하늘 글씨' 함께 지어봤어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가나아뜰리에에 입주한 가수 겸 화가 솔비(본명 권지안·37)의 작업실. 최근 이곳을 찾은 '풀꽃' 시인 나태주(76)가 한 작품을 골똘히 들여다보다 이렇게 말했다.

"(작품 속 언어가) 마치 '하늘 글씨' 같아요.

"
솔비가 다음 달 개인전에서 선보일 '저스트 어 케이크-허밍'(Just a Cake - Humming) 시리즈 중 하나였다.

올해 5월 아버지를 떠나보낸 솔비는 '플라워 프롬 헤븐'(Flower from heaven)이란 곡을 만들며 가사로 풀기 힘든 부분을 허밍으로 노래했다.

그리곤 어떤 말과 노래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알 수 없는 언어로 캔버스에 옮겨 '허밍' 시리즈로 내놓았다.

이 해석되지 않는 언어를 관객 각자의 이야기로 치환하란 의미를 담았다.

나태주는 자신도 재작년 94세 모친이 돌아가셨다며 "(이 작품이) 솔비 씨 얘기지만 제 얘기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제가 쓴 '묘비명'이란 시가 있어요.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부모가) 먼저 가니 잘 살다 오란 의미죠. 그러니 잘 사는 게 자식들 몫이에요.

"(나태주)
하늘 글씨란 표현을 무척 마음에 들어한 솔비는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활동 분야와 세대가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나태주가 최근 개설한 유튜브 채널 '나태주의 시[詩]스루' 촬영을 위해서였다.

'시스루'는 시인이 '내 마음이 담긴 한 줄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하고 시를 나누는 채널이다.

그는 시 한 수, 한 수가 모이면 문학제를 열어 팬데믹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의 선물로 전할 계획이다.

나태주·솔비 "시는 마음의 빨래…'하늘 글씨' 함께 지어봤어요"
◇ "파도가 바닥을 치면 그 힘으로 올라가죠"
이날 나태주는 선생은 직업이었고 시인이 본업이라며 "살기 위해 시를 써왔다"고 돌아봤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1964~2007년 초등학교 교사로 43년간 재직하며 저녁엔 시를 썼다.

심사위원 박목월 시인이 뽑은 등단작 '대숲 아래서'로 출발해 올해로 반세기를 시인으로 살았다.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에 띄워진 '풀꽃'을 비롯해 '내가 너를', '행복', '들길을 걸으며' 등 쉽고 간결하지만 울림을 주는 서정시로 많은 마음을 어루만졌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풀꽃')란 시구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설 인사에 인용하고, 그의 시집들은 BTS 제이홉 등 유명인들이 읽고 드라마에도 등장하며 대중적으로 뿌리내렸다.

2006년 혼성그룹으로 데뷔한 솔비는 솔로 가수로 활동하면서 10년 전부터 그림을 그렸다.

연예인 출신 비전공자라는 점 때문에 미술계에서 폄하되기도 했지만 국내외에서 꾸준히 전시를 열어 이젠 미술품 경매나 아트페어에서 '완판' 기록을 세운다.

연예계 생활을 하며 악성 댓글 등에 시달린 솔비는 "마음 치유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자신도 악플을 받은 경험이 한 번 있다는 나태주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들은 인터넷 너머 익명의 존재가 함부로 하는 말에 속수무책"이라며 "지나치게 상처받지 않을 방어 수단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솔비는 상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경험을 얘기했다.

작년 12월 보육시설 후원을 위해 제작한 케이크를 SNS에 공개하자 미국 현대예술가 제프 쿤스 작품을 표절했단 논란이 일었다.

이후 그는 케이크의 조형적 형태를 해체해 평면 회화로 표현한 '저스트 어 케이크-피스 오브 호프'(Just a Cake - Piece of Hope) 시리즈를 선보였다.

솔비는 "표절이다, 아니다 해명하기보다 작업물로 보여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힘들었지만 이 작업을 통해 새로운 시리즈가 나왔고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전화위복이 된 시간이었다"고 떠올렸다.

나태주는 "나쁜 것이 좋은 걸 갖고 오는 건 아니지만, 다른 걸 갖고 올 수 있다"며 "파도가 바닥을 치면 그 힘으로 올라가지 않나.

솔비 씨 작품에는 갈등, 에너지 분출, 새로움이 있다"고 칭찬했다.

나태주·솔비 "시는 마음의 빨래…'하늘 글씨' 함께 지어봤어요"
◇ "시는 마음의 빨래…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죠"
나태주는 "솔직하게 내 안의 감정을 분출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선순환이 중요하다"면서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소설가, 건축가, 작가 등 다른 예술가와 달리 시인(詩人)에겐 '사람인'(人)이 붙어요.

두 가지 뜻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또 사람처럼 살라는 것이죠."(나태주)
솔비가 "사람답게 사는 건 어떤 의미냐"고 묻자 나태주는 "선순환하며 사는 것"이라고 답했다.

"솔비 씨는 속에 쌓인 걸 끌어내야 하니 그림 작업을 하는 듯해요.

이를테면 눈물은 기쁘거나 감격스러울 때, 절망스러울 때도 나오죠. 울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해요.

우리 시대가 눈물을 감추거나 다른 쪽으로 해석하는데, 눈물처럼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건 없어요.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치유해주는 좋은 기능이죠."(나태주)
나태주는 "시나 음악은 영혼을 깨끗하게 해주는 빨래"라고 빗댔다.

그는 "한번은 강연에 갔더니 누가 '어떻게 그런 예쁜 말로 시를 쓰냐'고 묻더라"며 "난 내 마음이 어둡고 더러워서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좋은 말을 꺼내 쓴다.

시는 우리 마음을 해방시키고 어둠을 밝게 해준다.

흔히 하는 말로 치유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솔비도 "예술은 치유의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술 전공자가 아니지만 마음이 안 좋을 때, 나를 잃어버렸을 때 (그림을) 시작해 10년 정도 됐다.

처음엔 그림을 일기 형태로 기록했다.

그리다 보니 현대인에게 필요한 약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만남의 결과물로 두 사람은 각자 시를 지어 솔비가 손수 준비한 '작품' 뒷면에 새겨넣기로 했다.

나태주는 즉흥시 쓰기가 쉽지 않다는 솔비에게 "가슴 속 감정을 옷을 입지 않은 사람에 비유한다면, 글 쓰는 사람에겐 많은 옷이 필요하며 순발력 있게 잘 입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예술가들에겐 적당한 선에서 독자에게 숨겨진 자기를 들키고픈 '피관음증' 성향이 있다면서 "자신의 마음속 쓰레기통을 꺼내 보일 용기가 필요하다"며 빙긋이 웃었다.

중간중간 동요도 부르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의 시구는 이렇게 완성됐다.

'지우다 지우다 만 마지막 말/ 아빠를 만난 느낌이야/ 사랑해'(솔비 '하늘 글자')
'말로서 할 수 없는 말/ 글자로서도 다 할 수 없는 말/ 마음의 글씨로 보여드려요/ 그 나라에서 잘 계시지요?/ 나도 여기 잘 있어요'(나태주 '하늘 글씨')
만남 초반 눈물을 보인 솔비는 "제 마음에 물방울이 있는데 그 얇은 덮개를 톡톡 건드려주신 것 같다"며 헤어질 땐 밝은 웃음을 보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