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3세기 군주에게서 근대의 향기가 난다
세계 최초의 헌법이라고 불리는 ‘마그나 카르타’와 비슷한 시기에 역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한 헌장을 공표한 군주. 중세에 세계 최초의 공립대학인 나폴리대를 설립하고 아라비아 수학의 보급을 장려한 군주. 십자군 원정을 떠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협상만으로 예루살렘을 탈환한 군주.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1969년 첫 작품인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잡지에 연재할 때부터 13세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 관해 쓰고 싶어 했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나 시오노 나나미는 후세의 역사가들이 ‘황제의 좌에 앉은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묘사한 이 황제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아냈다.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다.

[책마을] 13세기 군주에게서 근대의 향기가 난다
프리드리히 2세는 본격적인 르네상스가 열리기 200년 전에 이미 과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종교와 세속을 분리한 법치국가를 세우려고 했던 선구자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시칠리아 왕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교황의 후견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러나 성인이 돼 황제로 즉위한 뒤부터는 교황과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켰다.

프리드리히가 처음 목표로 삼은 것은 당시 제후들이 권력을 가진 봉건국가였던 시칠리아를 중앙집권제 국가로 만드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그가 짜낸 묘수는 제후들을 국가의 주요 장관으로 임명해 통제하는 것. 로마법을 본떠 만든 헌장을 통해 법과 시민 정신을 부활시켜 무정부 상태였던 국가의 체계를 정비했다.

프리드리히는 교황과 충돌하며 여러 번 파문을 당했다. 십자군 원정을 약속된 기일에 떠나지 않아서 첫 번째 파문을 당했고, 그다음엔 교황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고 파문당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던 황제에 대한 공격이었다. 특히 사법, 경제, 세제 등 법치국가의 원리를 담은 ‘멜피 헌장’의 제정은 그리스도교적 세계 질서의 파괴이자 신에 대한 적대적인 행위로 여겨졌다. 교황은 이단 재판소를 개설해 황제를 이단으로 단죄하려 했다. 이런 압박에도 프리드리히는 외교와 지략으로 주변 국가들을 모두 자기편으로 만들고 오히려 교황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프리드리히는 자연과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 ‘매 사냥의 서’라는 조류 서적을 쓰기도 했다. 그는 사실에 근거한 고찰을 중요시했다. 그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쓸 것”이라며 “이 방법만이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과학의 길을 열 수 있다”고 적었다. 시대를 앞서간 열린 정신의 소유자였던 프리드리히의 삶은 끝까지 놀라움을 안겨준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