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리는 원베일리와 떡볶이[이송렬의 맛동산]
인류 역사를 통틀어 생존의 기본이 되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들어본. 맞습니다. 의(衣)·식(食)·주(住)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생 숙원인 '내 집 마련'. 주변에 지하철은 있는지, 학교는 있는지, 백화점은 있는지 찾으면서 맛집은 뒷전이기도 합니다. '맛동산'을 통해 '식'과 '주'를 동시에 해결해보려 합니다.

맛집 기준은 기자 본인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맛집을 찾는 기준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했습니다. 맛집으로부터 어떠한 금액도 받지 않은 '내돈내먹'(자신의 돈으로 직접 사 먹는 것)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초구에서도 한강 근처에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촌입니다. 동네에 걸맞은 재건축 대어(大漁)가 들어설 예정인데요. 삼성물산이 신반포3차, 경남아파트 자리(반포동 1-1번지 일대)에 공급하는 래미안 원베일리(원베일리)입니다. 지하 4층~지상 35층 규모로 지어지는 이 단지는 총 2990가구가 들어올 예정입니다.

서울 지하철 9호선 신반포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와 원베일리가 들어서는 곳까지 직접 걸어봤습니다. 왕복 6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높게 서 있는 아파트들을 구경하다 보니 2~3분도 채 되지 않아 원베일리 공사 현장이 나타납니다. '역세권에 사는 게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이 한 번 더 들었습니다.
래미안 원베일리 신축 현장. 사진=이송렬 기자
래미안 원베일리 신축 현장. 사진=이송렬 기자
3000가구에 가까운 대단지가 얼마나 큰지 느껴보기 위해 주변을 한 바퀴 돌아봤습니다. 눈앞에 반포대교가 보이자 '50m 앞 보행로 없음'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났습니다. 단지를 절반 정도 돌았는데도 15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서울시 공용자전거인 '따릉이'가 있고, 마을버스도 운행 중이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베일리의 장점 중에 하나는 주변에 편의시설이 있다는 점입니다. 단지에서 5분만 조금 넘게 걸으면 신세계백화점이 나옵니다. 고속버스터미널과 함께 센트럴시티로 불리는 이곳은 백화점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게들이 입점해있어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이곳을 나가지 않아도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반포 한강공원도 걸어서 나갈 수 있다는 점도 좋습니다.

'학군'도 장점입니다. 계성초와 신반포중이 인근에 있고 반포초와 반포중도 걸어서 통학이 가능합니다. 길을 건너면 래미안 퍼스티지 단지 안에 잠원초가, 옆으로는 세화여중, 세화여고, 세화고가 있습니다. 모두 강남 8학군에 속합니다.

학교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죠? 맞습니다 바로 떡볶이입니다. 강남 8학군에 있는 학생들이라도 방과 후 떡볶이는 못 참습니다. 집값이 상승하면 주변에 있는 인프라도 함께 수준을 높인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소비수준이 올라가서인데요. 하지만 추억의 맛을 지키는 식당이 있습니다.
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리는 원베일리와 떡볶이[이송렬의 맛동산]
허름한(하지만 결코 싸지 않은) 반포주공아파트의 오래된 상가에는 '애플하우스'라는 떡볶이집이 있습니다. 가게는 벌써 20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 중입니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지만 십수년 된 단골들도 여전히 방문합니다. 기자가 찾은 날 단골로 보이는 한 40대 중반 남성은 딸의 손을 꼭 잡고 "요즘 부쩍 사람이 많아졌다"며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했습니다.

"몇 명이세요?"라고 묻는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습니다. 토요일 반포동은 한산했지만 가게 안은 이미 인산인해입니다. 가스버너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빨간색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주문지에 즉석 떡볶이(즉떡)와 쫄면사리, 무침 군만두를 체크하고 선불로 계산합니다. 이 가게의 규칙입니다.
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리는 원베일리와 떡볶이[이송렬의 맛동산]
옆 테이블은 무엇을 주문했는지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잠시 주문한 즉떡과 무침 군만두가 나왔습니다. 떡볶이가 끓는 동안 이 집의 대표 메뉴인 무침 군만두를 먹었습니다. 입으로 가져간 군만두를 한 입 베어 물자 '바삭'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양념이 잔뜩 묻어 있어 눅눅하진 않을까?'라는 의심이 무안해졌습니다. 매력적인 식감에 양념치킨이 생각나는 달달한 양념, 그야말로 '중독' 그 자체였습니다.

무침 군만두를 먹다 보니 떡볶이도 알맞게 익었습니다. 일반적인 떡볶이와 달리 국물 색깔이 약간 거무튀튀합니다. 소스에 춘장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 가게 소스는 달콤함과 더불어 약간의 매콤함이 있습니다. 쫄면 사리가 더 불기 전에 얼른 건져먹습니다. 즉떡을 즐겨 찾지 않은 이유는 소스가 떡이나 어묵, 사리에 잘 베어들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 집은 다릅니다. 쫄면은 달큰한 소스를 이미 한껏 품었고 냄비에 담겨 있는 다른 재료들도 빠르게 소스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떡볶이 주인공인 떡과 어묵을 건져먹습니다. 쌀떡이 아닌 밀떡을 쓰기 때문에 더 쫄깃합니다. 냄비가 열전도율이 높아 빠르게 온도가 올라가면서 떡이 냄비 바닥에 눌어붙습니다. 살짝 눌은 떡을 떼먹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탄수화물의 민족답게 마무리도 탄수화물로 합니다. 떡볶이를 다 먹은 뒤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았습니다. 배신하지 않는 맛입니다.
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리는 원베일리와 떡볶이[이송렬의 맛동산]
볶음밥을 먹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를 주변으로 들어선 5층짜리 아파트, 과거 반포동의 모습은 재건축으로 점점 잊히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출출한 배를 채워줬던, 지금은 추억을 채워주는 떡볶이집은 그 자리에 여전히 있습니다. 가격도 즉석 떡볶이가 1인분에 3500원, 무침 군만두는 4개에 3500원으로 추억을 느끼기에 적당한 가격입니다

떡볶이 가격과 달리 원베일리는 반포동 '대장 아파트'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3.3㎡당 평균 5653만원으로 역대 최고 분양가를 기록했습니다. 전용면적 59㎡가 13억5000만원인데, 한강변을 따라 서 있는 아크로리버파크(아리파)의 전용 59㎡는 26억원, 건너편에 있는 래미안 퍼스티지 같은 면적이 26억2000만원임을 감안하면 최소 시세 차익이 13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총 2990단지 규모지만 일반공급 물량은 244가구뿐입니다. 이마저도 높은 분양가로 대출이 불가능해 현금을 가진 것은 물론, 높은 가점을 가진 사람들만 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원베일리'에서 베일리(Bailey)는 중세 유럽 시대에 성의 영주와 가족들이 거주한 성의 중심부라는 뜻입니다. 부촌인 반포동에서도 최고(ONE)가 되겠다는 뜻이죠. 부촌인 반포동과 서민을 대변하는 떡볶이. 반포동은 이제 떡볶이와 어울리지 않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이곳 오래된 떡볶이집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앞으로도 동네 주민들을 반길 것입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삼성물산 제공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삼성물산 제공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