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여만에 신작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출간…"새로운 언어 세계 창조"

"이 소설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역사상의 시점으로 설정하고 있지는 않다.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적대감과 적개심의 뿌리에 대한 무서움, 그 기초를 이루는 야만적 풍경과 모습들을 글로 쓰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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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이 3년여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파람북 펴냄)을 집필한 동기다.

김훈은 16일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대국가 시대부터 인간이 서로 대립하며 피를 흘렸던 폭력성의 뿌리와 공포의 근원을 써보고 싶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훈 "인간사회 적개심 기초 이루는 야만적 풍경을 쓰려 했다"
김훈은 현재 가장 두드러진 '야만'의 모습이 무엇이냐고 묻자 "약육강식을 제도화하고 심화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것은 정말 인간이 청산하기가 어려운 것"이라며 "약자가 나의 고기를 강자의 먹이로 줘야만 살 수 있다면 인간이 살 수 없는 세상 아니겠느냐.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한 인간의 사유는 깊지 않다.

일상화·제도화돼 인생은 원래 이렇다고 사람들이 생각한다"고 했다.

아울러 "인간의 선의와 작은 양심에 호소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역사적 경험이 없다.

그래서 제도와 구속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서 "약육강식을 나이브하게(순진하게) 해결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훈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전망해달라는 주문엔 "약육강식을 심화하려는 구조적 방식으로 가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문제나 여러 문제에 대해 가진 자들이 양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설 에필로그에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서식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 책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라고 적었다.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역사적 시공을 벗어나려는 나의 소망을 거기 쓴 겁니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거나 매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들에겐 세상을 지우고 새로 써보려는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
이 소설은 고대 어느 시점에 강을 사이로 대립하는 유목 국가 초(草)와 농경 국가 단(旦)의 치열한 전쟁을 그린다.

그 중심에는 각각 두 나라의 장수를 태우고 전장을 휘달리는 두 명마가 등장한다.

김훈은 말을 주요 캐릭터로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 "말은 문명과 야만의 동반자였다"면서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말의 자유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0여년 전 미국 그랜드 캐니언 남쪽 원주민 마을을 방문했을 때 어둠 속에서 수백 마리 야생마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말에 관해 써야겠다는 모호하고 강한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한국마사회 도서관에 가서 말의 생태와 역사 등에 대한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구상 과정을 거쳤다고 전했다.

아울러 자신의 마음속에 "유목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며 두 나라의 대립 속에서 유목 국가 쪽에 경도된 것 같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훈은 이번 소설을 통해 새로운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고 자부했다.

"화가의 물감이나 음악가의 음정에다가 정보 기능과 서사를 전달하는 것을 합쳐 지금까지 써본 적 없었던 새로운 언어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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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인간사회 적개심 기초 이루는 야만적 풍경을 쓰려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