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실태와 방안 살핀 토마 피케티의 저서 '자본과 이데올로기'
대물림·초집중 해소 위해 '사회적 일시소유'와 사회연방주의 제시

"'브라만 좌파'는 학력·지식·인적자본의 축적을 지향한다.

'상인 우파'는 무엇보다 화폐·금융자본의 축적에 의거한다.

이들이 특정 지점에서 분쟁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두 진영 모두 현행 경제체제와, 경제·금융 엘리트에게만큼이나 지식인 엘리트에게도 매우 큰 이득이 되는 현재의 세계화 양상에 대한 강한 애착심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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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명저 '21세기 자본'을 출간해 세계 경제학계의 큰 별로 떠올랐던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또 다른 대작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내놨다.

이번 한국어판 신작은 전작보다 500쪽가량이 늘어난 1천300쪽에 이를 만큼 방대하다.

'21세기 자본'이 경제에 치중해 자본주의에 내재된 불평등의 경제적 동역학을 분석했다면, 이번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역사와 정치를 포괄한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사회 불평등을 정당화 혹은 '자연화'하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동역학을 심도있게 다룬다.

이를 위해 피케티는 '불평등주의 체제'와 '소유주의 이데올로기'라는 두 개의 핵심 개념을 축으로 역사 속 다양한 사회들을 역사 자료와 통계 데이터로써 종횡한다.

이를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은 현대의 극단적 부의 집중과 불평등이 고정불변일 수 없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정당화해온 불평등을 넘어설 방안은 뭘까?
그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증대된 21세기적 불평등은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최고조에 달했던 '벨에포크 시기(평화롭고 풍요로운 유럽의 시대·1880~1914년)'에 비견될 만큼 심화하고 있으며, 이제 공동선을 명분으로 정당화하기가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뉴딜정책, 소득과 자산에 대한 강력한 누진세가 불평등을 완화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끌었던 20세기 중반 이후, 레이건과 대처로 상징되는 '보수혁명'을 거쳐 사적 소유에 대한 절대적 신성화를 기반으로 한 소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또다시 강력하게 부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선형적이지 않을지언정 인류 진보를 향해 꾸준히 진전해왔다.

피케티는 이번 책에서 한 사회의 불평등이 그 사회의 정치와 이데올로기로 정당화되고 고착되기도 하지만, 사회를 다른 형태로 전환시키는 힘이기도 하다는 걸 역사학적·경제학적 연구로 실증한다.

그는 서문에서 "불평등은 경제적인 것도, 기술공학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다.

달리 말해 시장과 경쟁, 이윤과 임금, 자본과 부채, 숙련노동자와 비숙련노동자, 내국인과 외국인, 조세피난처와 경쟁력, 이런 것은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못한다"고 밝힌다.

책의 1부 '역사에서의 불평등주의체제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그 정당화의 기원을 다룬다.

특히 근대 이전의 전사(귀족)-사제(지식인)-제3신분(노동자와 농민)으로 이뤄진 삼기능적 신분사회가 프랑스혁명이라는 단절을 경유해 19세기 서유럽에서 만개한 소유자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제2부 '노예제사회와 식민사회'는 유럽 열강의 제국적 식민주의를 통해 한 사회의 불평등이 그 내부와 외부를 가로지르며 전개되는 양상을 기술하는데, 특히 식민지배의 종언에서 유럽 국가들이 가장 공을 들인 것이 식민지 피지배 노예들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유럽인 노예소유자에 대한 배상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볼셰비키 혁명과 1·2차 세계대전, 유럽 사민주의사회 출현을 거치며 세계의 불평등은 역사적으로 가장 완화된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러나 냉전과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서유럽의 보수 우경화, 소련과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21세기에 불평등이 다시 폭발적 증대현상을 보이고 있다.

제3부 '20세기의 거대한 전환'과 4부 '정치적 갈등의 차원들을 다시 사유하기'는 금융자본의 세계화와 초집중, 조세피난처로 상징되는 불투명성으로 한 국가 안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재분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현시대를 다룬다.

부의 불평등이 대물림되며 더욱 집중되는 현상, 유럽 사민주의 정치가 재분배 야망을 포기한 대가, 옛 공산국가 지배자들의 과두정치와 재정 불투명성, 엘리트 중심의 교육 불평등으로 심화하는 소득 불평등 등이 20세기 중반에 상대적 평등을 실현했던 계급정치의 실종으로 귀결됐다.

이 기사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바처럼, 과거 노동자들의 정당이었던 좌파 정당이 고학력·고소득자들의 정당으로 바뀌어가고, 전통적 상위 자산 보유자들의 터전인 보수 정당들이 사회토착주의로 가난한 50%를 유인하는 현재의 정당정치가 전 세계적 현상임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대물림과 초집중을 해소할 방안은 뭘까? 피케티가 제시하는 방안은 '사회적 일시소유'와 사회연방주의다.

사회적 일시소유는 재산세나 토지세 같은 사적소유에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누진소유세로 통합해 개별적 부의 대물림을 막고 사회적 상속을 실현키 위해 '사회적 관계로서의 사적소유' 개념을 전면화하자는 것이다.

"누진소유세가 구현하는 일시소유 개념은, 이미 20세기에 실험된 누진상속세와 누진소득세에 내포된 일시소유 형태의 연장선에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제도적 조치들은 소유가 사회적 관계이며 따라서 규제돼야 한다는 관점에 기초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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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소유의 확산에 더해 국경·이민·민족·종교 등을 둘러싼 균열과 이로 인한 비극들을 평등주의적 연대로 묶어내는 방안으로 피케티가 제시하는 게 사회연방주의다.

이 사회연방주의는 자본에 대한 초민족적인 규제와 개입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학력 엘리트에 준거하면서 자산 엘리트와 타협하는 유럽 사민당-미국 민주당 계열의 좌파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 근거해 인민계급의 물질적 이익을 옹호함과 동시에 이런 방향을 초민족적인 연방제의 형태로 구현돼야 한다는 전망을 집약한다.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펴냄. 1천300쪽. 3만8천원.
역사적으로 정당화해온 불평등을 넘어설 방안은 뭘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