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제작된 MBC 다큐 ‘1919-2019, 기억록’의 안중근 의사 편.  /MBC 제공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제작된 MBC 다큐 ‘1919-2019, 기억록’의 안중근 의사 편. /MBC 제공
1926년 10월 서울 종로에 있던 극장 ‘단성사’. 이곳엔 관객들의 통곡 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아리랑’을 따라 부르다 못내 터져 버린 울음이었다. 그들 앞에 놓인 스크린엔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이 흐르고 있었다.

영화는 대학을 다니다 3·1운동에 참여한 영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이 일로 일제의 고문에 시달려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됐다. 그러다 일본 경찰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기호가 자신의 여동생을 탐한다는 걸 알게 된다. 영진은 분노하며 낫으로 기호를 죽인다. 그가 일본 경찰에 끌려갈 때 ‘아리랑’ 선율이 구슬프게 흐른다. 그리고 변사는 외친다. “여러분, 울지 마십시오. 이 몸은 삼천리 강산에 태어났기에 미쳤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울지 말라는 이 얘기에 관객들은 더 서러운 눈물을 흘렸을 테다. 영진은 자신과 가족, 나라를 송두리째 잃은 한민족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원본 필름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 관객들 반응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영화의 의도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잊을 수 없고, 잊어선 안 되는 우리의 역사를 오래도록 남기는 일 말이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다. 100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지만 대중에게 이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대가 거듭돼도 우리는 또 다른 ‘아리랑’들로 끊임없이 이를 재현한다. 고통과 설움의 역사를 박제하지 않겠다는 집단무의식, 나아가 집단의지의 힘이다.

100주년을 맞아 이런 움직임은 더욱 분주히 일어나고 있다. 극장에선 지난달 ‘말모이’가 상영됐고, 오는 27일엔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오른다. TV를 틀면 MBC 다큐 ‘1919-2019, 기억록’, KBS 역사토크쇼 ‘도올아인 오방간다’ 등이 나온다. 뮤지컬 ‘신흥무관학교’와 ‘영웅’,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도 100주년을 기념해 펼쳐진다.

시대 변화에 맞춰 재현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2016년 MBC 예능 ‘무한도전’에서 랩으로 역사를 노래한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시와 삶을 다룬 ‘당신의 밤’은 많은 인기를 얻었다. “당신의 꿈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 있길.” 윤동주는 그렇게 랩을 즐겨 듣는 현재의 청춘들이 마음에 품고, 닮고 싶은 인물로 환생했다. 지난달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발표한 기념음원도 힙합이다. 래퍼 비와이가 부른 ‘나의 땅’이란 노래다. “이제는 절대로 가져갈 수 없어. 너와 나의 땅.” 경북 안동시는 지역 독립운동의 상징인 ‘임청각’과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소재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체험관 ‘놀팍’을 마련했다. 새로운 기술을 입은 콘텐츠로 아이들이 생생하게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역사는 ‘선택된 기억’이다. 이 수많은 기억 중에서도 우리는 또 한 번 선택을 한다. 그리고 하나의 순간을 포착해 콘텐츠로 만들어 낸다. 이런 문화적 행위는 오랜 과거를 지금 당신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으로 가져다 놓는다. 그들의 불안과 고뇌가 시간을 거슬러 이어지며 함께 연결돼 있다는 느낌도 든다. ‘텍스트’로 다 기억되지 못할 일들을 ‘이미지’로 각인하는 효과도 있다. “대한독립 만세”를 절절이 외치는 조상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은 그동안 본 영화, 드라마 등의 도움이 크다. 일제가 민족문화말살 정책을 편 것은 이 파급력을 알고 단절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1919-2019, 기억록’을 보던 중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제는 어디에 매장했는지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방송에서 안중근 의사의 삶을 소개한 배우 이제훈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언제쯤 그분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디선가 대한민국을 기다리고 있을 안중근 의사. 반드시 모셔와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우리는 반복해 묻고 찾아야 한다. 그렇게 잊지 않는 한, 역사 그리고 이를 지탱해온 분들의 혼은 결코 박제되지 않으리라.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