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에 관한 극단적인 평이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기술적 설명을 넘어 새로운 시각에서 평가한 책이 나왔다. 미래가치 창출의 촉매제이자 가치 패러다임의 기본 틀로 비트코인의 혁명적 가치를 강조한 《비트코인 레볼루션》이다. 최근 암호화폐의 가격이 폭락하면서 이를 바라보는 분위기는 과거 이맘때와 대조적이다.

지난해 말 강력한 정부 규제 덕에 비트코인 폭락에 따른 대규모 투자자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실제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하드포크(hard fork: 기존 블록체인과 호환되지 않는 새로운 블록체인에서 다른 종류의 가상화폐를 만드는 것) 관련 내분도 문제지만, 아직도 암호화폐 생태계를 주도하는 집단의 편협함과 조급함이 드러난 측면이 있다. 이래저래 안착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무모한 시도를 되풀이하면서 암호화폐 빙하기에 접어든 게 현실이다.

[책마을] 동네북 된 비트코인…'혁신 연료'로 부활할 수 있을까
저자는 미국 미시간대와 버지니아대에서 각각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에서 조사부 연구위원,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 컨설턴트를 역임한 뒤 금융감독원 블록체인 자문단장을 맡고 있다. 그는 비트코인과 관련해 제한적인 틀 안에서의 해석을 넘어 더 폭넓은 시각과 심층적인 직관을 견지하고 있다. 저자는 대표적 법정 화폐인 달러가 세상 가치의 바로미터로 활용되는 배경 아래에서는 비트코인의 본질적 가치 평가는 현재 완료형이 아니라 미래 진행형이라고 강조한다.

2019년 1월3일은 비트코인의 제네시스 블록(암호화폐 발행을 위해 만들어진 첫 블록) 10주년 기념일이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소개된 배경엔 기존 법정 화폐 체제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세계 금융위기가 있다. 세상은 안전을 갈망하는데 안전자산의 공급처는 미국과 유럽뿐이었다. 믿었던 법정 화폐 체계에 세상을 온전히 맡기기엔 금융위기가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심해지는 양극화로 민주주의 기반이 훼손되고 자본주의의 근간마저 흔들리면서 세상은 극단주의자가 주도하는 혼란과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중앙화되고 분열적인 기존 체제는 초연결 환경에 접한 사회구성원의 행복과 안전을 지켜주는 데 엄연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더욱 균형 잡힌 초연결 환경에 적합한 지배구조와 이에 기초해 가치 창출이 가능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게 답이라는 것이다.

책의 1장은 ‘열풍에서 본질로’, 2장에서는 ‘암호화폐 논란의 핵심 짚기’를 다룬다. 투기와 정책당국의 성급한 규제로 얼룩지고 흐트러진 암호화폐의 본질을 찾기 위해 ‘다소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지면을 할애했다. 3장에서는 앞으로 닥칠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특히 금융의 플랫폼화)를 저자의 전문적인 지식과 미래를 꿰뚫는 통찰력으로 피부에 와닿게 기술한다. 마지막 4장에서는 새로운 생태계를 위해 정책 당국과 국민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제시한다.

환경의 변화를 수용하는 새로운 화폐와 미래 사회의 모습을 비트코인 혁명을 통해 조망해보려는 노력이 신선하다. 초연결 환경이 선사하는 엄청난 기회를 각국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법정 화폐만을 활용해서는 제대로 살리기 힘들다. 전인미답의 영역에 진입하려면 모든 참여자가 공유하는 인센티브가 필요한데, 기존 법정 화폐가 이런 포괄적 기능을 장착하기는 어렵다.

더 우려되는 것은 사물인터넷(IoT) 환경에서 소액결제까지 처리하려면 법정 화폐로는 불가능한 여건에 봉착한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이 발행량을 관리하는 체제하에서 외부적으로 가치 파악이 어려운 실험적 차원의 새로운 작업을 포용하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가치창출의 기반을 다져가려면 참여자 스스로의 인센티브가 확보돼야 한다. 놀랍게도 인센티브가 장착된 화폐기능을 비트코인은 이미 10여 년 전에 제시했다.

불법적인 영역에 먼저 눈을 뜬 점은 아쉽지만 건전한 주체의 참여로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가능하다. 아직도 다수의 암호화폐 투자자는 가치 상승만 기대하면서 스스로 가치 창출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메시지는 간과하거나 망각하고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책임있는 주인의식을 거듭 강조한다. 신뢰 구축에 실패할 경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비트코인 레볼루션’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