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7억원에 낙찰된 정선의 ‘노송영지도’.
2001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7억원에 낙찰된 정선의 ‘노송영지도’.
서양화가 김환기 화백의 점화 ‘무제’가 48억6750만원(3300만홍콩달러)에 팔려 국내 작가 미술품 중 낙찰 최고가를 기록했다.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이 지난 4일 홍콩 르네상스 하버뷰호텔에서 연 경매에서다. 김 화백의 또 다른 추상화 ‘19-Ⅶ-71 #209’(47억2100만원)와 박수근의 ‘빨래터’(45억2000만원), 이중섭의 ‘황소’(35억6000만원)도 30억~40억원대에 거래되며 한국 서양화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수묵과 담채 등 전통 한국화는 맥을 못 추고 있다. 1998년 미술품 경매가 시작된 이후 국내 미술시장에서 서양화 부문 최고 그림값이 50억원 가까이 치솟도록 한국화는 1980년대 중반 이후 30여년째 정체 상태다.
전통 한국화시장 30여년 '빙하기'
○변관식과 정상화 그림값 5~7배 차이

최근 미술계에 따르면 겸재 정선의 1775년작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가 2001년 서울옥션에서 7억원에 거래돼 한국화 부문 최고가를 찍은 이후 특별한 가격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경매시장에서는 심사정의 ‘쌍치도’(3억6000만원), 김홍도의 수묵담채화 ‘선고지과도’(3억500만원), 허주 이징의 ‘백응박압도’(3억1000만원), 긍재 김득신의 ‘종리선인도’(2억7500만원), 변관식의 ‘금강산 사계’(2억5500만원), 이상범의 ‘영막모연’(3억4000만원) 등이 그나마 억대 작품 대열에 올라 있다.

한국화와 서양화의 경매 최고가 격차는 7배로 벌어졌다. 조선시대 스타 화가 ‘삼원·삼재(三園三齋:장승업·김홍도·신윤복, 정선·심사정·조영석)’는 물론 20세기 초 화가들의 그림값도 30년 전보다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근대 한국화의 대가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은 40호 전지(100×72.7㎝) 크기의 수작이 1억~1억2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는 반면 단색화가 정상화의 비슷한 크기 작품은 7억~10억원대를 호가하고 있다. 작품값 차이가 8~10배나 벌어진 셈이다. 이상범은 지난 15년간 낙찰총액(75억6000만원)이 근대 한국화가 가운데 가장 많았다. 하지만 김환기의 지난 한 해 낙찰총액(244억원)의 30% 수준에 그쳤다.

청전과 소정을 제외한 근대 한국화가들의 작품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허백련 김은호 박승무 노수현 장우성 김용진 김응원 오세창 등 40호 크기의 작품은 1980~1990년대에 비해 50% 이상 하락한 1000만~2000만원, 김은호 작품 또한 2000만원에 나와 있지만 사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서양화가 오치균의 작품 한 점 값(40호·1억원)이면 한국화 인기 작가의 작품 4~5점을 살 수 있다”며 “한국화 시장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바닥세”라고 분석했다.

○3040컬렉터 한국화 구입 꺼려

전통 한국화와 서양화의 작품가격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 198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확산된 아파트 문화를 꼽는 사람이 많다. 미술품 투자자들이 한국화가 아파트와 빌라 등 현대식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구입을 극도로 기피하는 대신 서양화 위주로 수집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일부 대학에서는 한국화 관련 학과를 아예 폐지하고 있다. 상업화랑들 역시 거래 부진을 이유로 한국화 전시를 꺼려 침체를 부추기고 있다.

윤용철 인사전통문화보전회장은 “제 집에서 대접을 더 못 받는 ‘도메스틱 디스카운트(domestic discount)’가 문제”라며 “저평가된 한국화를 사는 데서 미술시장의 붐은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최근 미술시장의 수요층이 넓어지고 애호가의 기호도 다양해지고 있어 전통성과 정체성을 겸비한 작품이라면 점차 긍정적인 국면도 기대해볼 만하다”고 내다봤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