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남쪽에 있는 라이프치히는 괴테를 낳은 예술의 도시다. 바흐는 이 도시의 성 토마스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27년간 활동했고 멘델스존이 지휘를 맡았던 최초의 민간 관현악단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예술적으로 비옥한 이곳에 1990년대 초부터 청년 미술가들이 라이프치히시각예술대(HGB)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평면회화의 부활을 외치는 HGB 출신 젊은 화가들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뉴 라이프치히 화파',이른바 'yGa(young German artists)'로 불리며 국제 미술계의 중심축으로 떠올랐다.

'뉴 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작가인 팀 아이텔(40 · 사진)이 처음으로 서울을 찾았다. 2일부터 다음달 23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화랑에서 개인전을 펼치는 그는 "현란한 이미지가 홍수를 이루는 디지털 시대에도 회화는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 마력의 고안품"이라고 말했다.

슈투트가르트대에서 철학을 공부하다 통독 후 HGB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엄격한 구성과 빈틈없는 장인정신으로 유명하다. 기초를 중시하는 HGB의 보수적인 학풍 때문이다.

아이텔은 현대인의 어두운 이면을 회상하는 동시에 불투명한 현재와 미래를 독특한 시각으로 보여준다. 낯선 장소에서 방황하는 여행자,망연자실한 청년,지치거나 낙담한 노동자들은 현대인의 우울과 공허를 상징한다. 거친 채색은 광고 포스터나 만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현대인들을 직설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등장인물의 움직임과 변화를 없애 관람객들에게 '생각'을 유도하려 노력했다"고 했다.

"많은 대상을 사진으로 찍고 그 가운데 필요한 인물과 배경을 꺼내와 화면에 재장착하죠.그렇다고 제 작품이 포토리얼리즘은 아닙니다. 관람객들이 스스로 해석하고 느낄 수 있게 하지요. "

관람객 개인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렌즈가 되는 동시에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에 대한 공감을 모두 이끌어내겠다는 얘기다.

아이텔은 "제 작품은 우리 사회에 대한 관람자들의 인식을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할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여기며 간과했던 것들을 다시 상기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며"그런 점에서 회화의 본질은 영원하다"고 덧붙였다.

회화 장르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미디어 설치,조각,사진 장르도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화면 위에 다시 불러내는 표현방식에 더 흥미를 느낀다"고 답했다.

이번 전시에는 2000년 이후 제작한 회화 16점이 걸린다. 전통 이미지를 고수하면서 회화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독일 현대미술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02)720-152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