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종교와 윤리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대가의 숭고함과 공짜의 부정함을 가르치지만,현실은 그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체의 권력은 사람의 DNA에 새겨진 공짜추억을 억압해왔다. 그런데도 디지털 세상은 손오공의 머리띠를 벗겨내듯 공짜세상을 활짝 열어놓았다. 모든 것을 비용없이 간단히 복제할 수 있는 세상이다.

빌 게이츠가 만든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역사는 바로 공짜를 둘러싼 대결의 역사다. MS 창업 첫해인 1975년 갓 스무살의 빌 게이츠는 매우 진지한 어조로 공짜에 대한 성전(聖戰)을 선언했다. "4만달러나 들여 만든 소프트웨어를 불법복제하는 것은 도둑질과 다름없다. " 그러면서 그는 'SW 도둑질'이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새로운 SW 개발을 할 수 없게 돼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랬던 빌 게이츠가 20여년이 흐른 1998년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케 했다. "중국인들은 매년 300만대가 넘는 컴퓨터를 구입하지만 SW에 대해서는 한 푼도 지불하지 않는다. 하지만 SW를 도둑질해 쓰려거든 MS 제품을 선택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중국인들은 MS의 소프트웨어에 중독될 것이고,앞으로 10년 안에 우리는 그 이용료를 징수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

과연 10년이 지난 지금 MS의 위상에 이변이 없는 것을 보면 빌 게이츠의 전략은 들어맞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2006년 《롱테일경제학(The Long Tail)》으로 주목받은 저자가 3년 만에 신작을 내놨다. 디지털 경제에서는 히트상품보다는 틈새상품의 성공이 훨씬 큰 몫을 차지한다는 제1발견을 다룬 전작에 이어,이번 신작 《프리(Free)》에서 디지털 경제는 공짜경제라는 제2발견을 이야기한다.

'공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런 공짜 개념이 변화함에 따라 우리는 인간의 행동과 경제적 인센티브에 대한 기본 시각을 재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공짜의 새 개념을 이해하는 자들이 오늘의 시장을 무너뜨리고 내일의 시장을 지배할 것이다. '

전작의 주장처럼 상품 제조와 유통을 위한 한계비용이 영(0)에 접근하는 디지털 경제에서는 상품의 효용과 가치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상 공짜이거나 거의 공짜다. 그렇기 때문에 본상품을 팔기 위한 무료샘플처럼 조건이 붙지 않는 진짜 공짜로 제공된다.

그렇다면 상품의 가치는 어디로 이동하는가? 가치가 이동하는 곳을 발견하고 움켜쥐어야 경제의 기초인 희소성을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2007년 19달러짜리 새앨범 '플래닛어스' CD를 280만장이나 공짜로 뿌린 프린스는 공짜경제의 훌륭한 사례다. 프린스는 음반 라이선스 수입 560만달러를 날렸지만,공짜 CD에 끼워넣은 콘서트 할인초대권이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공연장으로 오도록 만든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1880만달러의 순수익을 올렸다. 무료가 사실상의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 MP3의 복제문제를 놓고 음반업체와 네티즌이 벌이는 논란과 안쓰러운 복제방지 노력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책은 공짜 항공여행과 공짜 자동차,등록금 없는 대학 등 사람들이 꿈꿔온 멋진 공짜세상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모든 것이 공짜가 되는 세상에서 '돈이 숨은 틈새'를 발견하는 힌트를 준다. 물론 이 책을 읽을 때 공짜에 대한 선입견을 먼저 버려야 한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