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청춘남녀가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여자가 홀연 자취를 감춰버렸다. 간신히 연락처를 알아낸 남자는 여자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여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남자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고 만다. 오랫동안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했던 그들은 서른다섯이 되어서야 재회할 수 있었다. 풋풋한 첫사랑부터 결정적인 순간 때맞춰 일어나는 운명의 장난질까지,뻔한 신파극으로 보이지만 반전(?)이 있다. 여자는 '남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는,세기를 대표하는 추녀'였다.

소설가 박민규씨(41)의 신작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예담)는 정말 너무하다 싶을 만큼 못생긴 여자와 그를 사랑한 남자의 연애담이다. 듣는 순간 '은근한 매력이 있나?''돈이 많았나?'라는 궁금증이 절로 솟아나는 것만 봐도 비현실적인 설정이다. 그런데 이 사랑은 사회 변두리로 밀려난 비주류들의 감수성과 등을 맞대면서 현실감을 얻는다.

못 생긴 어머니가 잘생긴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를 안고 자란 주인공 '나'는 1980년대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말이 통하는 친구 요한과 너무하다 싶을 만큼 못생긴 그녀를 만난다. 문득 어머니가 생각난 '나'는 그녀에게 끌리고,요한이 중매인처럼 나서면서 셋은 즐겁게 어울린다. 하지만 추한 외모 때문에 늘 따돌림당하고 놀림받은 탓에 사랑 앞에서도 오랜 열등감을 이길 수 없었던 그녀는 '나'의 곁을 떠난다. 뜻밖의 사고로 재회할 기회를 놓친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독일에서 그녀를 만나고서야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자신을 '어둠이 집인 인간'이자 '마음의 단두대에 올라 스스로를 절단한 존재'라고 여기는,아름다운 외모를 지니지 못한 그녀의 슬픔은 권력도 돈도 아름다움도 갖지 못한 비주류들의 아픔과 열등감을 대변한다. 그런데 소설은 소수자들이 소수자들의 고통을 확대재생산한다고 말한다.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라고 지적하며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라고 요한이 통찰했듯.

'나'의 사랑이 트라우마에서 시작됐다는 설정이 다소 작위적이긴 하지만,소설이 진행될수록 사랑하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진다. 그래서 감미로운 연애소설로 읽힌다. 소설에서 사랑받고 사랑한 그녀는 끝없이 덧나고 영원히 이어질 상처가 아물어 흉터로만 남는 경험을 한 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올 힘을 얻는다. 미운 얼굴을 지닌 그녀처럼 대부분 사람들은 부족해서 못났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보잘것 없는 존재들에게 사랑이 찾아오는 순간 기적이 깃든다. 사랑은 '시시한 그 인간을,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상상해 주는 일'이고 '인간이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