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김수현 작가의 명대사들은 그저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드라마 속 대사처럼 가슴에 와 닿는 말들이 가을 하늘 아래 귀를 쫑긋 기울인 예비작가들의 가슴에도 꽂혔다.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의 마당에 마련된 김수현 작가의 팬미팅 현장. 제3회 서울드라마페스티벌이 '2008 대한민국 대표작가'로 선정한 김 작가가 예비 작가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의 인기 비결에 대해 "내가 사람을 잘 그리기 때문인 것 같다"라면서 "특별한 소재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우리들의 이야기 가운데서 끄집어내 쓰기 때문에 계속해서 작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40년간 드라마를 집필한 원천을 소개했다.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팬미팅에는 예비 작가들과 김수현 작가의 팬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외부 행사에 좀처럼 나서지 않는 김 작가는 후배 작가들의 이어지는 질문에 직설적이면서도 솔직한 대답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많은 박수를 받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주옥같은 대사를 만들어 내는 비결은 무엇인가.

▲대사를 만들어본 적은 없다.

그냥 작업하다 보면 저절로 튀어나오는 대사를 옮겼을 뿐이다.

하나 기억나는 것은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의 "당신 부숴버릴 거야"로, 그 대사를 쓸 때는 잠깐 멈췄다.

어떤 말로 하면 좋을까 조금 신경 쓴 것 중 유일하게 기억나는 대사이다.

--자신의 작품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드라마는.
▲나는 별로 애착 가는 게 없는 사람이다.

모든 것에 별로 애착이 없어서 작업 하나 끝나면 흘려보내지 특별히 한참 뒤까지 잡고 있지 않는다.

--'엄마가 뿔났다'가 불륜이나 엽기 없이도 '대박'이 난 이유는.
▲최근 드라마들이 엽기, 불륜, 출생의 비밀 등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들을 바닥에 많이 깔고 그 것들을 통틀어 비빔밥을 만든다.

나도 불륜 드라마를 썼지만 오로지 불륜 하나만 가지고 썼다.

요즘 어쩌다 후배들의 시놉시스를 보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많은지 나한테 그 시놉시스를 갖고 쓰라면 여덟 편은 쓸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상당히 심플한 이야기를 주제로 잡고 작업을 해왔다.

그럼에도 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것은 아마 내가 사람을 잘 그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모습과 소통되기를 원하는 것 같다.

--'엄마가 뿔났다'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부모를 바보로 생각하지 마라'였다.

모든 자식들한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엄마가 뿔났다'의 주제였다.

--장미희 씨가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그 캐릭터는 너무 잘 타고나서 공주님으로 나이가 먹은 여자이다.

철이 안 난 여자를 쓰면서 나도 '이 여자 싫다고들 하겠다'라고 걱정을 했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궁금하다.

장미희 씨에게는 '거북해하지 말고 써준 대로만 하세요.

당신 그 자체로 가도 됩니다.

나를 믿고 오세요'라고 말했다.

미희 씨가 그 나이에도 무너지지 않고 너무 예뻤고 옷도 잘 찾아 입어 눈요깃거리로 볼 것도 있었다.

그 양반 자체가 아름다웠고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지 않았나.

철없이 늙어가는 여자였지 악랄한 본성이 있는 게 아니어서 교감이 된 것 같다.

장미희 씨 덕을 많이 봤다.

--마르지 않는 이야기 샘의 원천과 모든 세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노하우는 무엇인가.

▲데뷔를 1968년에 했으니 올해가 만 40년이다.

아마도 특별한 소재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우리들의 이야기 가운데서 끄집어내 쓰기 때문에 계속해서 작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별히 신선한, 희한한 소재를 찾아 헤맸다면 오히려 긴 세월동안 작업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20대 아이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도 가끔은 감각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하지만 항상 자신 있게 쓴다.

그 나이나 지금 우리나 대동소이하다.

스무 살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스무 살이 되고 팔십 할아버지가 나오면 그 인물이 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좀 직설적이고 할 말은 죽어도 해야 되는 사람이라서 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 할 말을 하는 것이 내 캐릭터와도 관계가 있다.

--요즘 즐기는 드라마는.
▲'베토벤 바이러스'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음악을 듣는 재미로 보다가 재미있어졌다.

다 착한 사람들이 나와서 아주 기분 좋게 보고 있다.

'신의 저울'도 볼만하다.

딱 보면 작가의 함량이 나오는데 함량들이 괜찮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중학생 습작 같은 드라마도 많은데 이들은 그렇지 않다.

요즘 20-30대 작가들은 퀄리티가 떨어진다.

--앞으로 계획이나 구상 중인 작품은.
▲'사랑과 야먕', '내 남자의 여자', '엄마가 뿔났다'까지 피치 못하게 바트게 작업해왔다.

이제 내년 1년은 완전히 쉬려고 한다.

아마 다음 작업은 SBS하고 할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백지상태이다.

다만 오늘 이경영이라는 배우가 너무 오래 쉰다는 생각은 했다.

편안하게 일할 수 있게 용서해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의 실수에 대해 너무 잔혹하다.

나는 이경영이라는 연기자의 연기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물론 출연을 하면 난리가 나겠지만 겁날 것 있나.

--작가지망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정말 부끄럽지 않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작가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나도 즐겁게 시청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인기나 명성, 시청률이나 고료에 대한 관심은 끄고 오로지 작품을 어떻게 알뜰한 것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요즘 작가들은 김수현만큼 작업하기보다는 김수현만큼 비싼 작가료 받기만 생각하는 것 같다.

요즘 드라마는 장난이 반이다.

아무리 드라마가 오락이라고 하지만 나는 늘 작품활동으로 생각하고 일을 한다.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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