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걸출한 예술가 미켈란젤로(1475∼1564)의 예술 세계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로제마리 슈더의 '거장 미켈란젤로(한길아트)'는 그의 인간적인 내면 세계를 마치 한 폭의 사실화처럼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것을 보면 '작가의 상상력은 이렇게도 발휘될 수 있구나' 싶다. 피렌체 근교 카프레세에서 태어난 미켈란젤로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술가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가 주로 활동하던 16세기 초엽은 로마 교황청의 파행이 극에 이르고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저마다 생존을 위해 암투하던 때였다. 그는 20세가 지나자 로마로 가서 '바쿠스'와 '피에타'를 제작하고 1527년에는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피렌체 포위 전에서 수비군 쪽에 섰던 일로 말미암아 베네치아로 망명하게 된다. 1534년 교황의 허락으로 로마에서 걸작 시스티나 예배당의 제단화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1541년에는 불후의 역작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게 된다. 미켈란젤로 역시 예술가 이전에 한 사람의 생활인이었다. 그 역시 가족 부양과 빚,생활고라는 삶의 숙명적인 무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일감을 수주해야 하고 그것을 맡긴 권력자들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순응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위대함은 이런 현실 속에서도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위해 기울인 불굴의 정신과 노력에 있다. "주문한 사람들의 요구는 빈번히 묵살되었다.그들의 요구 사항은 별게 아니었다. 그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뛰어난 것보다는 이해하기 쉽고 친근한 것,평범한 것을 좋아했다.그리고 그들로서는 뛰어난 것을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그래서 평범한 것이 기준이 된다면,바로 평범성이 뛰어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 역시 쉬운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완전히 태워버리 듯이 치열하게 살았던 그의 일생이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본래 삶이란 무엇인가를 향해서 완전 연소시켜야 하는 것일까. 공병호 경영연구소장 gong@go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