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프랑스 지식인들의 적극적이고 선도적인'현실 참여'는 '앙가주망'이라는 프랑스 어휘를 하나의 고유명사로서 전세계에 정착시킬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체 게바라와 함께 게릴라 활동을 했던 프랑스의 대표적인 '참여 지식인'으로 현재 리용대학 교수인 레지 드브레(61)는 「지식인의 종말」(예문)에서 오늘날프랑스 지식인에 가차없이 '종말'을 선언하고 있다. 드브레는 지식인의 사회적 사명을 진지하게 수행한 1900년대 초반 지식인들을 '최초의 지식인'으로, 현시대 지식인들은 '최후의 지식인'으로 구분한다. 드브레는 에밀 졸라나 앙드레 지드, 사르트르 등 '최초의 지식인'들은 때로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고 때로는 판단 착오의 오류도 범했지만 성실하게 이론적 입장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앙가주망을 구현한 지식인들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최후의 지식인'들은 '최초의 지식인'이 보여줬던 모습을 흉내내고 있지만 타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질타한다. 그들은 코소보사태나 체첸사태 등의 현장에 나타났지만 깊이 사고하고 여론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럴 듯하게 포장된 단견과 억견을 쏟아놓으며 매스컴에 얼굴 들이밀기에 바빴다는 것이다. 드브레는 이러한 '최후의 지식인'들에게서 다섯 특징을 찾아내고 있다. "최후의 지식인들은 자신 속에 갇혀 대중과 단절되어 있으며(집단자폐증),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면서(현실감 상실증) 여전히 사회의 모럴을 선도한다고 자만하고(도덕적 자아도취증), 들어맞지도 않는 예측을 쏟아놓고(만성적 예측 불능증) 자신의 이름이 자칫 잊혀질까 매스컴의 리듬에 맞춰 설익은 견해들을 유창한 언변으로 늘어놓는다(순간적인 임기응변증)." (제2부 '지식인의 임상보고서'에서) 드브레는 21년 전 "지식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철학자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와 "예언가인 척하는 지식인들이 전성시대를 맞았다"고 한탄한 피에르 노라와 궤를 함께 하고 있다. 이 책은 "지배질서를 뒤흔들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비판적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 소장 사회학자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독립된 지성은 존재하는가」(삼인)를 떠올리게 한다. 강주헌 옮김. 232쪽. 1만3천원.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k02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