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대구시내 삼덕동의 관음사 주지실.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는 가운데 30년 이상 이 곳을 지키고 있는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원명(元明.71) 스님과 찻상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14세때 구산 스님(전 송광사 방장)을 은사로 김천 청암사 수도암으로 출가한 원명 스님은 할아버지뻘인 효봉 스님(조계종 전 종정.구산 스님의 은사)을 10년 넘게 모신 수좌 출신이다. 그래서일까,주지실은 송광사를 옮겨다놓은 듯한 분위기다. '牧牛家風'(목우가풍)이라 쓴 글씨의 전각과 보조국사 지눌의 영정,보조국사가 들고 다녔다는 불감의 사진,효봉·구산 스님의 사진이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먼저 목우가풍의 뜻이 궁금했다. "목우자(牧牛子)는 보조 스님의 아호인데 목우가풍이란 당시 불교가 타락해 바람의 등불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중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 부처님 말씀대로 참되게 수행했던 그 스님의 가르침과 수행정신을 말합니다. 이런 가풍을 본받자는 것이지요. 중이 부처님 말씀을 버리고 딴 것을 찾을 수 있나요" 때문에 원명 스님은 도를 닦기 위해 출가한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자세를 강조한다. 산중과 달리 현실과 타협하기 쉬운 도심사찰에 살면서도 계율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뜻에서다. "출가는 몸으로 하는 것과 마음으로 하는 두가지가 있어요. 절에 가서 삭발하고 가사장삼을 입는 것은 몸의 출가요,탐진치(貪瞋痴·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음) 3독을 여의는 것은 마음의 출가입니다. 몸만 출가하고 마음은 탐진치로 가득차 있다면 진정한 출가라 할 수 없지요" 원명 스님은 계율을 지키는 것에 대해 "밥을 먹으면 반찬을 먹듯이 중이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출가자에게 계율은 곧 생활이요,그 생활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은 "송광사에서 선방의 용상방(龍象榜·선방 수좌들의 직책과 소임을 적은 게시판)에 이름을 붙여놨을 뿐"이라고 했지만 승보종찰(僧寶宗刹)인 송광사에서 율주로 모신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지식은 많은데 안목이 없어요. 지식수준이 높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거든요. 달마대사가 중국에서 불립문자(不立文字)견성성불(見性成佛)을 내세웠던 것은 당시 중국불교가 교학 위주의 지식만 있고 마음의 안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안목을 가질 수 있을까. 원명 스님은 "안목은 스스로 쌓아올리는 것"이라며 수행정진을 강조했다. 절집에 이(理)와 사(事)가 있듯이 지식도 갖추고 마음도 닦아야 한다는 얘기다. "탐진치 3독심만 비우면 안목이 열려요. 지금 밖에 비가 오지만 원래 해가 안뜬 것이 아니고 구름이 걷히면 해가 비치는 것 처럼 안목도 어디서 새로 오는 게 아니라 원래 갖고 있는 겁니다. 단리망연(但離妄緣)즉여여불(卽如如佛)이라,다만 망령된 생각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님이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망령된 생각을 여의고 도를 이루려면 몇가지 전제조건이 있다고 원명 스님은 지적한다. 인과와 연기의 도리를 믿고 막행막식(莫行莫食)을 삼가할 것,계율을 엄격히 지킬 것,불법의 도리를 굳게 믿을 것,하나의 수행방편을 정해 곧바로 달려나갈 것 등이다. "해인사 선방에 가면 '唯以無念爲宗(유이무념위종)'이라는 편액이 있는데 오직 무념으로 종(가르침)을 삼는다는 뜻입니다. 참선이나 기도 염불은 오로지 망령된 일체의 생각,우리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탐진치 3독심을 내려놓고 쉬게 하려는 것입니다" 효봉 스님을 시봉하던 얘기를 묻자 원명 스님은 "어른을 얼마나 오래 모셨느냐보다는 그 수행을 얼마나 본받아 믿고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나는 (효봉 스님에) 미치지 못했다"며 한국전쟁 때 피난 중이던 경남 통영 용화사 도솔암에서 자신에게 내린 친필 선경어(禪警語)를 들려줬다. 청간동류수(請看東流水·동으로 흘러가는 저 물을 보라) 곤곤무정시(滾滾無停時·도도히 흘러 멈추지 않네) 참선약여시(參禪若如是·만약 참선을 이같이 하면) 견성하득지(見性何得遲·견성이 어찌 더딜까) 원명 스님은 효봉과 구산,두 스승이 내린 '무(無)'를 화두로 들고 스무차례 이상의 안거를 거치며 수행자로 초지일관해왔다. 그는 "효봉 스님은 누가와서 딴 사람 흉을 보면 가만히 다 듣고 나서 '이놈아,너나 잘해라'고 일갈하셨다"면서 남 얘기 하기를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을 경책했다. 원명 스님은 알뜰하기로도 유명하다. 한번 쓴 편지봉투를 뒤집어서 새로 풀칠해 쓸 정도다. 일제 때 지은 일본식 사찰인 관음사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자는 의견에 대해서도 "누가 지었든 어떻게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또 신도들에게 시주금을 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딱 잘랐다. 국내의 여러가지 비리사건과 미국 테러사태 등에 대해서는 "인간의 고통을 구제하려고 부처님이 출현하신 것처럼 절망을 보고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당 앞에 심은 연잎에 맺힌 빗방울이 맑고 투명하다. 대구=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