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로 죽어가는 아이 앞에서 ''구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1964년 사르트르는 르몽드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구토''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소설.

사르트르는 문학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문학의 죽음''을 선포했다.

그러나 저널리스트 고종석씨의 생각은 다르다.

''아이가 굶주려 죽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문학은 거기에 분명 책임이 있다.

그러나 문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찌될까.

인간의 죽음이 동물의 죽음보다 중요하게 취급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문학이 있기에 굶주리는 아이는 추문(醜聞)이 된다.

그것이 21세기에도 문학이 남아있어야 할 이유다''

고종석씨의 산문집 ''코드훔치기-21세기 산책''(마음산책)은 거대담론의 주요 쟁점을 정리한 상당히 묵직한 책이다.

저자는 서양근현대정신사를 넘나드는 박람강기(博覽强記)로 전지구적 문제를 항목별로 요약한다.

고씨의 입장은 개인주의,자유주의,세계주의를 옹호하는 것.

''태초에 개인이 있었다''로 시작되는 고씨의 글은 ''개인주의 혁명''을 부르짖는 것으로 끝난다.

고씨에 따르면 현대예술을 앞당긴 것은 위대한 개인주의자들이었다.

보들레르는 고전적 작시법에서 시를,세잔은 전통적 원근법에서 회화를 해방시켰다.

예술가는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한 나르시스.

이같은 개인주의가 소수 예술가가 아닌 대중에 의해 실천되는 사회가 21세기다.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는 자기 몸에 반한 여자 이야기다.

그녀는 풍속의 감시자를 비웃으며 개인주의를 실천한다.

21세기는 우리 모두가 서갑숙,즉 나르시스가 되는 시대다''

고씨는 20세기의 스포츠 엘리트주의도 비판한다.

근대올림픽은 1896년 국제 평화를 위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씨는 노동계급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주장한다.

스포츠는 첫째,사회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인간의 파괴욕망을 분출시킨다.

둘째,자본주의에 환멸을 느끼는 노동자를 술에서 떼어놓음으로써 생산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셋째,공정한 경쟁 이데올로기를 선전할 수 있다.

한마디로 스포츠는 인민의 아편이다.

그러나 ''노동의 종말''이 선언된 21세기 노동자는 더이상 착취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쓸모없는 존재로 치부될 뿐이다.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는 인간을 몰아내고 제3의 노동계급 ''실리콘칼라''를 형성한다.

테크노크라시의 미래는 기술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저자는 ''사회주의의 미래-사라진 유토피아와 연대의 열망''''가족의 유연화-동시적 가족의 가능성''''공화정을 위하여-민주주의를 넘어서''''열한번째 계명-우리들 안의 짐승 들여다보기'' 등을 통해 전체주의와 민족주의를 비판한다.

한국일보 ''모색21''연재분.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