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하는 세계 최고 역사학자로 꼽히는 에릭 홉스봄 영국 런던대 교수.

그는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저서를 잇따라 출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진보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유연한 시각과 풍부한 지식으로 어떤
입장의 독자라도 거부감없이 빨아들이는 장점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보적 학풍의 런던대학 버크벡 칼리지를 은퇴한 뒤에도 명예교수로서
고집스레 연구실을 지키고 있는 노대가 홉스봄이 이탈리아의 저널리스트
안토니오 폴리토와 대담한 내용을 담은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강주헌 옮김,
끌리오, 8천8백원)가 나왔다.

그는 이 대담을 통해 21세기에 가장 중대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전쟁,
민족국가의 미래, 경제분야에서의 세계화, 좌파의 운명, 인구문제 등과
관련해 특유한 예리한 안목을 보여주고 있다.

홉스봄은 먼저 "20세기 끝자락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한 세계대전이나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나 "전통적인 형태의 국지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홉스봄은 민족국가 문제와 관련, 현재로서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총합적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범세계적인 "권위체"가 탄생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미국이 어떤식으로든 세계를 변화시키려 할 것이지만 세계가 하나의 나라에
지배되기에는 너무 넓어지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경제 분야에서의 세계화가 눈부시게 진행됐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원천적으로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재화를 평등하게 분배하겠다는 것은
무모한 환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아울러 "완전한 자유경제가 실현 단계에 와있는 선진국에서 소득
편차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세계가 부유해질수록 평등 사회의
구현은 더욱 멀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세계 각 지역의 인구 불균형이 21세기 인류가 직면할 가장 커다란 문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홉스봄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세계에서 살아가게 될지를 예언하기 보다는
지금의 이 세계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 강동균 기자 kdg@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