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벽이 높을수록 문학은 키를 낮춘다.

문학이야말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시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점에서 최근 나온 4권의 시집이 주목된다.

박주택(40)씨의 "사막의 별 아래에서"와 안정옥(50)씨의 "웃는 산", 조윤희
(44)씨의 "모서리의 사랑", 노혜경(41)씨의 "뜯어먹기 좋은 빵"(이상
세계사).

4인4색이지만 삶의 그늘과 인간 본성을 공통 화두로 삼은 시집들이다.

박주택씨는 세상의 불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어둡고 퀴퀴한 우물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갑자기 발 아래에
투명유리를 들이댄다.

이것이 "얼음"의 이미지로 자주 변용되는 "거울"이다.

그는 이를 통해 지상과 천상의 경계를 비춘다.

그의 시에는 "음산한 구름"과 부패한 냄새,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의 길로 가는 수행과정처럼 치밀하게 준비된 고통이다.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어가 "집" "방" "얼음" "별"로 요약되는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12행으로 된 시 "하늘로 가는 단칸방"이 절창이다.

"늙은 어머니가 중풍으로 누워/수족을 움직이지 못하고//삼십을 넘게
건사해 온 장애 아들은/못에 노끈을 매고 있다/ (중략) /툭! 의자가 굴러가고
/노끈에 목을 맨 아들이 컥컥거릴 때//그 온몸으로 쥐어짠 눈물의 힘으로/
단칸방 하늘로 올라간다"

지상의 갇힌 공간을 천상으로 끌어올리는 힘은 바로 "별"이다.

수직상승의 매개로는 바다가 동원된다.

"바다에 오면 파스 냄새가 난다"("안흥")는 표현도 맛깔스럽다.

후각적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며 강렬한 색상과 회화적 이미지를 그려내는
기법이 예사롭지 않다.

안정옥씨의 작품에는 나무와 숲이 많이 등장한다.

식물성의 극단적인 은유와 상상력은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 호수와
숲길을 연상시킨다.

"우주를 들어올리는 어린 싹"이 "뿌리에서 줄기로 다시 잎으로" 뻗어가고
작은 빗방울은 금강으로 모여들어 시인의 몸 속으로 스며든다.

그는 강물이나 나무들과 한 몸이 되기도 하고 그 몸 속에 우주를 다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진정한 합일의 의미를 찾는다.

그 속에는 자연뿐만 아니라 세속도시의 삶이 오롯이 들어앉아 있다.

그는 "아마도 박태기나무는 돈주고/사지는 못할 것 같고 아버지, 다른
생에서/만난다면 나는 박태기나무장사를 할테니/딴 집으로 가지 말고 내게로
오세요"("박태기나무" 부분)라며 자연과 인간의 순환고리를 정감있게
보여준다.

조윤희씨의 첫시집인 "모서리의 사랑"은 철저한 자기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들머리의 작품들은 박상륭 소설 "죽음의 한 연구"에 빗대어 자신을
"비루먹은 들개" "들소 발굽 아래/자지러지는/개미" "창자 속에서/독이 되는
똥" "토악질 하는/바다" 등으로 자학한다.

그는 혹독한 자기모멸의 고통을 뒤집어쓰고 중심이 아닌 모서리로 스스로를
내몬다.

세상 모든 것들이 북채가 될 때 그는 "내 속에 들어와 있는 줄기가 나를
통과해 뻗어"나간 자리에서 마침내 "누군가를 향해 스스로 여는 몸"으로
환생한다.

"타락천사" "토탈 이클립스" "천국보다 낯선" 등 영화제목을 빌려온 것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영상미학을 잘 활용해 눈길을 끈다.

노혜경씨는 역사와 신화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거침없는 상상력의 변주를
보여준다.

소통부재.실어증으로 상징되는 현실을 "네이티브 스피커"와 대비시킨 것이나
죽음과 얼굴을 포개놓는 방식이 독특하다.

특히 시극 "성모의 기사"는 아우슈비츠와 광주의 슬픔을 겹쳐놓은
"20세기의 진혼곡"(김정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80년대의 "과녁"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그가 새롭게 제시한 "세기말의
화살표"이기도 하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