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넓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 서양에서 극찬하는 백자 ‘달항아리’의 미학이다. 이 아름다움은 그저 겉모습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큰 대접 두 개를 빚어 위아래로 이어 붙여 하나의 순환하는 세계를 구축하는 제작 방식이야말로 달항아리가 품고 있는 철학이다. 위와 아래가 하나 되고, 하늘과 땅이 조화롭게 맞아떨어진 듯한 모습 말이다. 2000년 넘게 천상의 이데아를 지상에서 실현하려 한 서양인들은 어쩌면 달항아리의 이런 본질적 아름다움에 마음이 홀렸는지 모른다. ‘보따리 작가’의 둥근 우주유럽 예술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 거대한 달항아리가 자리 잡았다. 19세기 프레스코화가 수놓은 돔 천장에서 빛이 쏟아지면 바닥을 빈틈없이 뒤덮은 거울이 이를 반사해 발아래 또 다른 돔을 만들어낸다. 하늘과 바닥이 빛으로 조응하는 이 공간에 선 인간은 우주를 유영하듯 끊임없이 사유에 잠긴다. ‘보따리 작가’ 김수자(67)가 파리 부르스드코메르스(BdC)-피노컬렉션 미술관에 펼쳐낸 무한한 우주다.BdC는 파리 중심가 1구에 있는 미술관이다. 보테가베네타, 발렌시아가 같은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케링그룹 창업주이자 미술품 옥션 크리스티를 소유하고, 1만여 점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계 큰손 프랑수아 피노(88)가 세웠다. 18세기 곡물거래소로 쓰이던 건물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리모델링해 2021년 문을 열었는데, 금세 파리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현대미술관이라는 명성답게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는 매번 화제였다. 오는 9월 2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흐르는 대로의 세상’은
'덕후'는 위대하다. 좋아하는 대상을 알아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기 때문이다. 화질이 좋지 않아 희미하게 보이는 몇 십년 전의 영상을 돌려본다거나, 오로지 몇 페이지만을 위해 수백 장이 넘는 책을 읽기도 한다. 뛰어난 재능과 창의성을 가진 작가들도 맘 속 깊은 곳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하는 '덕질'엔 예외란 없다.미술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진 조각'이라는 장르를 처음 들고 나타난 작가 권오상도 지난해 '흔한 덕후'중 한 명이 됐다. 그는 브론즈나 메탈, 암석 등 전통 조각에서 주로 쓰인 무거운 재료를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스티로폼 위에 다양한 사진을 조각내 콜라주 기법으로 이어 붙였다.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새로운 조각의 등장에 예술계는 열광했다. 해를 거듭하며 '함께 일해보자'는 러브콜이 쏟아졌다.2020년엔 에르메스가 대구점 첫 개점 당시 '윈도우 디스플레이'를 함께할 작가로 그를 꼽았다. 2016년 에르메스 시드니와, 2017년 에르메스 상하이와 함께한 그의 협업 작품에 큰 관심을 가지면서다. 가수 지드래곤의 브랜드로 잘 알려진 피스마이너스원, 밴드 킨과의 협업 조각도 선보이며 대중에게도 눈도장을 찍었다.이런 권오상이 첫눈에 반해 푹 빠진 '그만의 아이돌'은 바로 조각가 문신. 문신은 본래 회화 작가였지만, 프랑스 유학을 떠나며 조각가로 전향했다. 1971년 발카레스에서는 높이만 13m에 달하는 목조각 '태양의 아들'을 전시하며 프랑스 예술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의 부인과 결혼할 당시 프랑스에서 '부부에게 모두 영주권을 줄 테니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아달라'고 했을 정도다. 문신은 기
괴곡산장 - 사립문(Intro)[지난 편에 이어서]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산장지기는 저 검은 허깨비가 속삭이는 수수께끼에 일순 귀를 의심했다.‘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여기까지 듣자 관종과 산장지기 모두 혼비백산했다. 그 순간, 다섯 아낙네의 힙한 그림자가 수풀 뒤에서 잠시 어른거리는 듯하더니 그대로 사라지더라. 이는 필시 죠선국에 상서로운 징조이거나 그 정반대이렷다.괴곡산장 2편 - “영파씨는 양파 씨가 아닌데 왜 매운맛이옵니까”“짐이 요즘 기가 허해진 모양이다. 얼마 전에도 헛것을 보았다. 요즘 쇄국과 개국을 둘러싸고 조정에 분란이 잦도다. 무역 관련 고심이 깊어 ‘내이부(內耳部·역주: naver)’에 영파시(寧波市·중국 저장성의 무역 도시인 닝보시)를 검색했더니 글쎄 웬 아녀자들의 영상이 돌출하여 화들짝하였구나. 우리 비(妃)가 볼까 두려워 황급히 창을 닫았다.”전하, 그것은 영파시가 아니라 영파씨이옵니다. 요사이 백성들 사이에 회자되는 젊은 놀이패이옵니다.“짐은 ‘양송이의 사랑’을 좋아한다.”전하, 그것은 양파 씨이옵니다. 곡목은 ‘애송이의 사랑’이옵니다…. 놀이패 영파씨는 위연정, 지아나, 정선혜, 한지은, 도은의 다섯 처자로 구성됐습지요. 지난해 10월 등청할 때부터 희귀한 힙합 걸그룹을 표방해 ‘하이부의 막내딸’, 아니, ‘국힙의 딸들’이란 별칭을 득한 신인이온데, 올 3월 말 내놓은 신곡 ‘XXL’이 ‘유투부(流愉部·역주: youtube)’에서 일주일 만에 1000만 조회수를 돌파했사옵니다. 현재는 3000만 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