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감독 루이 브뉘엘은 초현실주의 영상의 거장으로 20세기 영화사를
장식했다.

데뷔작인 "안달루시아의 개"(1928년)를 만들 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만 찍겠다"고 한 뒤로 평생 기존의 윤리와 가치체계로는 해석할 수
없는 세상의 뒷면을 영상에 담아왔다.

그의 영화는 그래서 엉뚱하고 혼란스럽다.

그가 일흔일곱에 찍은 유작 "욕망의 모호한 대상"(1977년) 역시 엉뚱하다.

주인공을 더블캐스팅(캐롤 부케, 안젤라 몰리나)해 처음 얼마동안 관객을
헷갈리게 하는게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잡을 듯 하다가 잡지 못하는 인간의 성적인 욕망과
강박심리에 대한 조롱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세련된 중년 사업가 마티유(페르난도 레이)는 하녀로 일했던 젊은 처녀
콘치타를 유혹한다.

선물과 돈 공세를 펼치며 그녀의 처녀성을 정복하려 한다.

하지만 콘치타는 몸과 마음을 줄 듯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간다.

그러면서도 늘 마티유의 곁을 맴돈다.

콘치타는 마티유를 성적으로 학대하며 행복을 얻고 마티유는 자신이 그녀의
노리개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육체적 욕정에 더 깊이 빠져든다.

새디즘과 매조키즘, 가진자의 뒤틀리고 비뚤어진 삶과 욕정의 적나라한
모습을 통해 개개인의 내면과 사회의 이면에 두텁게 도사리고 있는 위선과
가식을 발가벗긴다.

향수 샤넬No5의 평생공식모델인 캐롤 부케의 지적이면서도 쌀쌀맞은 모습이
볼만 하다.

브뉘엘이 갖가지 상황과 상징속에 끼워넣은 메시지를 찾아내는 지적게임을
즐기는 것도 재미있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