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의 역사 왜곡 문제는 심심찮게 거론된다.

드라마에서 역사를 다룰 때는 그 내용이 아무리 허구라도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 신중을 기해야 한다.

우리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현대사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정통 역사물이 아니라 극 전개상 역사적 사실을 차용할 경우에도
예외일 수 없다.

3일 첫 방송된 KBS2TV 월화 미니시리즈 "폭풍속으로" (극본 서미애,
연출 이덕건)는 한국판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표방한다.

부족한 것 없이 정직하게 살아가던 한 인간이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고통받다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버린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그리겠다는 것.

"폭풍속으로"는 이같은 내용을 전개하는 시공간적 배경으로 파란만장한
80년대 한국현대사를 등장시킨다.

드라마는 극초반 자막을 통해 극의 시점을 80년 2월로 못박았다.

몽테크리스토백작이 지하 감옥에서 무고한 옥살이를 했다면, 주인공
이강찬 (이창훈)은 81년 생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인간이하의 끔찍한
고통을 당한다.

이강찬이 정체불명의 정부기관에 끌려가게 된 사건은 79년 "YWCA
위장결혼집회"를 연상시킨다.

문제는 내용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기 위해 역사적 맥락을 고려치 않은채
각각의 역사적 사건을 마음대로 끌어쓰는 것.

이러한 점은 그 시대에 실제로 이강찬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존재
했으리라는 개연성을 손상시킨다.

화면 어디서도 80년 분위기는 찾아지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옷차림이나 카메라가 비추는 공간은 현재와 다를 바 없다.

시대를 짐작케 할 만한 것은 화면에 잠깐 등장한 구형택시와 버스 1대가
고작이다.

이같은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면 초반내용 전개에 있어
별 무리는 없다.

최기철 (오대규)이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기 위해 친구를 밀고하는 것,
수사과장 이형섭 (정성모)이 출세를 위해 이강찬을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시도도 수긍할수 있다.

친구사이인 이강찬 최기철 나동환 (홍일권) 사이의 갈등요인도 잘
드러났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 위해 필요하다는 통속성도 충분해 보인다.

몇몇 연기자의 과장된 연기가 눈에 거슬리지만 참고 볼 만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탈 역사적인 요인들을 깡그리 무시해야 한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