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은 병원이나 공공기관에 쌓인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한계가 많았다. 기업들이 연구 목적으로 빅데이터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적 근거가 2020년 마련됐지만 의료기관들이 의료법 위반 등을 우려해 자료 제공을 꺼렸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런 ‘보이지 않는 장벽’이 사라진다. 정부가 관련 지침 개편에 나서면서다.

보건복지부는 1일 첨단산업 글로벌 클러스터 전략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데이터 기반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고도화 방안을 보고했다.

2020년 8월 가명정보 활용을 위한 데이터3법이 시행됐지만 민간기업은 물론 학계도 신약 개발이나 건강 증진 등을 위한 연구 목적으로 의료 데이터를 쉽게 쓰지 못했다. 의료법에 따라 병원에 쌓인 환자 데이터를 외부로 반출할 수 없는 데다 생명윤리법에 따라 환자 검체 등을 활용할 땐 개별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을 통해 ‘가명 처리해 환자를 식별하지 못하는 진료기록은 의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놨지만 여전히 의료법 생명윤리법에 저촉될 것이란 우려가 컸다.

이날 복지부는 이 가이드라인을 다시 바꿔 ‘절차에 따라 병원이 기업에 가명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 의료법 위반을 우려한 병원들의 심리적 장벽을 허물겠다는 취지다.

공공기관인 보건의료정보원이 대학이나 연구소, 기업 등의 요청에 따라 병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 있는 정보를 대신 전달하는 중개 플랫폼도 구축하기로 했다. 기업이나 연구진이 직접 적합한 데이터를 보유한 병원을 찾아 헤매는 불편을 줄여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다.

유전체 정보 활용 범위도 확대한다. 지금은 진단기업 등이 제품을 개발할 때 많이 알려진 질환이나 암 신규 변이 등 두 가지 정보만 쓸 수 있는데 앞으로는 암 변이 정보를 폭넓게 사용할 수 있다.

오는 7월부터 질병관리청이 갖고 있는 예방접종 이력, 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건강검진 정보를 개인 동의에 따라 외부 플랫폼 등에 전송할 수 있다. 개인이 원하는 특정 플랫폼에서 건강정보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내년부터는 병원 진료기록, 엑스레이 검사 사진, 혈당, 심전도 등도 직접 관리할 수 있다. 병원 내 정보를 연구 용도로 쓰는 데 필요한 절차도 줄어든다. 데이터심의위원회 생명윤리위원회 등의 절차를 일부 통합해 평균 6개월 걸리는 심의 기간을 절반으로 줄일 계획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