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상반기 시드 투자 유치로 100억원대 자금을 끌어모은 스타트업 세 곳이 있다. 망고부스트와 이스크라, 슈퍼센트가 주인공이다. 시드 투자 유치는 설립 단계에 있는 기업이 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을 말한다. 아직 본격적인 사업 채비를 갖추기도 전에 벤처캐피털(VC)과 대기업 등이 앞다퉈 “자금을 대겠다”며 돈 보따리를 들고 찾아온 것이다.

보통 시드 투자 자금이 몇억원대 수준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특히 올 상반기 주가지수 하락으로 투자 시장이 위축된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들 3인방은 어떤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가장 큰 특징으로 화려한 인재 풀을 들고 있다.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이른바 ‘어벤져스’급 창업자들이 손을 잡았다. 비교적 명확한 수익모델도 투자자들의 마음을 끌었다. 규모의 경제나 참신함만을 강조하다가 적자를 이어가는 스타트업이 즐비한 가운데 초기부터 흑자 가능성을 부각하며 차별화했다는 평가다.
시제품도 없는데 수백억 뭉칫돈…떡잎부터 남다른 스타트업 3곳

○DPU 분야 최고수들 떴다

최근 인공지능(AI)이 전 산업으로 확산하고 각종 데이터를 대규모로 처리하려는 수요가 급증했다. 그동안은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이 대규모 연산 처리를 맡아왔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CPU와 GPU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최근 부상한 프로세서가 DPU(Data Processing Unit·데이터처리장치)다. 최근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앞다퉈 관련 투자를 확대하는 이유다.

국내에서는 지난 3월 망고부스트가 설립되자마자 DPU 분야 최고 기업이라는 평가를 꿰찼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분야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김장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와 제자들이 뭉쳐 설립했기 때문이다. 김장우 망고부스트 대표는 19일 “DPU 분야에서 우리 팀은 논문, 특허 등에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DPU 시장이 아직 초기인데 우리 기술을 세계 시장에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서 창업했다”고 말했다.

망고부스트엔 DPU 관련 반도체, 소프트웨어를 오랫동안 개발해온 국내외 박사급 경력직이 10명 이상 합류했다. 창업과 동시에 설립한 미국 법인 대표는 인텔 본사에서 DPU 개발을 이끈 에리코 누르비타디 박사가 맡았다. 김 대표는 “연구진만 보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개발 역량으로 망고부스트는 설립 2개월 만에 시드 투자금(종잣돈) 130억원을 유치했다. 심지어 시제품도 없는 극초기 단계에서 받은 것이다. 스톤브릿지벤처스, DSC인베스트먼트, 머스트벤처스 등 국내 벤처캐피털(VC)과 홍콩계 자산운용사 IM캐피탈파트너스 등이 투자했다. 망고부스트는 상용화가 바로 가능한 DPU 개발 기술을 보유한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 대표는 “창업하고 외부에 제대로 알린 적도 없는데 투자자들에게 연락이 왔다”며 “모든 투자금을 받지는 않고 지금 필요한 규모만큼 투자받았다”고 설명했다.

망고부스트는 올해 안에 시제품 ‘MBDPU-1’을 내놓을 예정이다. 데이터센터 등의 성능을 기존보다 세 배 이상 높인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시제품을 이미 글로벌 IT 기업들과 테스트하고 있다. 글로벌 DPU 시장을 선도하는 엔비디아와 AMD 제품보다 성능을 40% 이상 개선했다는 게 회사 측 평가다.

○설립 멤버 대부분이 연쇄 창업자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 개발사인 이스크라는 개발 단계에서 총 520억원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웬만한 스타트업이 시리즈C나 D단계에서 투자받을 만한 자금을 종잣돈으로 받은 것이다.

이홍규 대표는 “창업 멤버들이 대부분 연쇄 창업자들로, ‘엑시트(자금 회수)’까지 한 경험이 있다”며 “블록체인과 게임, 글로벌 사업 등 세 가지 분야에서 멤버들이 갖춘 전문 역량을 인정받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라인의 블록체인 분야 총괄 임원에 이어 라인의 조인트벤처인 ‘언체인’ 대표를 지냈다. 여기에 넷마블, 한게임 등을 거친 김현수 전 파티게임즈 대표와 넥슨, 디즈니 등에서 일한 류인선 전 라인 금융플랫폼 사업총괄 등이 합류했다. 레벨업게임즈를 창업하고 브라질, 콜롬비아, 인도, 필리핀 등에서 성공시킨 벤 코레이코 전 레벨업게임즈 대표도 창업 멤버로 나섰다.

탄탄한 팀 구성 덕분에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인 크러스트를 비롯해 위메이드, 네오위즈, 메타보라 등 게임 개발사와 카카오벤처스, 패스트벤처스 등 VC들이 투자 대열에 섰다.

이스크라가 개발 중인 ‘런치패드’는 커뮤니티 중심의 게임 플랫폼을 지향한다. 다양한 장르의 P2E(돈 버는 게임)를 출시하고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이 기여도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는 구조다. 게임사는 개발 단계에서 게임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대체불가능토큰(NFT)을 발행했다. 게임 이용자, 개발사, 투자자 등 플랫폼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플랫폼을 운영하고 발생한 수익도 분배하겠다는 게 이스크라의 취지다.

류인선 이스크라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블록체인을 통해 이용자들이나 개발자 등이 플랫폼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또 플랫폼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얼마인지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게 했다”며 “기여도에 따라 참여자 모두에게 공정하게 보상이 돌아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 출시하자마자 북미 1위

지난해 문을 연 슈퍼센트는 게임 스타트업 111퍼센트의 자회사다. 지난 4월 모회사인 111퍼센트를 비롯해 미래에셋벤처투자, 미래에셋캐피탈, 신한벤처투자 등으로부터 160억원 규모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이 회사는 하이퍼캐주얼 장르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하이퍼캐주얼 게임은 1분 이내의 짧은 시간에 간단한 조작을 통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한 장르다.

슈퍼센트는 선데이토즈에서 ‘국민 모바일 게임’으로 불렸던 애니팡의 사업총괄을 맡은 공준식 대표가 이끌고 있다. 공 대표는 애니팡 앱 내 광고를 붙여 수익을 극대화하는 모델을 도입했다.

공 대표는 슈퍼센트가 시드 단계에서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틱톡’과 같은 쇼트폼(짧은 영상) 콘텐츠 열풍을 꼽았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부는 쇼트폼 바람이 하이퍼캐주얼 게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모바일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해 하이퍼캐주얼 게임 앱의 다운로드 수는 150억 건으로 2020년보다 약 25% 늘어났다.

공 대표는 “과거 게임들은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성장할 수 있었고 조작도 어려운 데다 게임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방식이 많았다”며 “하지만 최근엔 ‘잠깐 잠깐’ 즐기는 게임으로 시장의 축이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투자자들은 이 회사의 해외 확장성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슈퍼센트는 매출의 95%가 해외에서 나온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달고나 뽑기 같은 미니게임을 모은 ‘K게임 챌린지’는 지난해 출시되자마자 북미 지역 양대 마켓에서 다운로드 수 1위를 기록했다.

김주완/고은이/김종우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