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경기 성남시 판교 IT밸리 전경. 판교역 인근을 거점으로 네이버, 카카오를 비롯한 유수의 IT 기업이 밀집해 있다. 사진=한경DB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경기 성남시 판교 IT밸리 전경. 판교역 인근을 거점으로 네이버, 카카오를 비롯한 유수의 IT 기업이 밀집해 있다. 사진=한경DB
매출 1조 규모의 판교 정보기술(IT) 기업에 근무 중인 개발자 A씨는 지난달 IT 대기업으로부터 이직 제의를 받았다. 회사 매출 규모는 10배 이상 큰 곳이었다. A씨는 이를 거절했다. 그는 "회사 네임밸류(인지도)는 낮지만 배움의 기회와 적지 않은 연봉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이 회사에 남기로 했다"고 말했다.

A씨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최근 경력 개발자 연봉을 6000만원 수준으로 인상했다. A씨는 "이직 제의를 한 IT 대기업이 제시한 연봉은 이보다 높았지만, 최근 개발자 연봉이 오르고 있고 실제 연봉 인상률도 높아지는 분위기라 결국 재직 중인 회사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중소·중견 게임사도 올린다…신입 초봉 '6000만원 시대'

16일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 IT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달 국내 1위 게임업체 넥슨이 개발직군 신입 사원 초봉을 5000만원으로, 전 직원 연봉을 800만원씩 인상한 뒤 IT 업계 연봉 인상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연봉 인상의 포문을 연 넥슨에 이어 넷마블·컴투스·게임빌·스마일게이트·네오위즈 등이 연봉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중견 게임사인 크래프톤은 연봉을 2000만원씩 올려 초봉을 6000만원으로 책정해 단숨에 넥슨·엔씨·넷마블 등 '빅3'를 제치고 게임사 가운데 최고 대우를 내세웠다.

엔씨소프트도 지난 11일 개발자와 비개발자 연봉을 각각 1300만원과 1000만원씩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회사에서 필요한 인재라고 판단되면 아무리 신입 사원이라도 연봉의 상한선을 두지 않기로 했다.

개발자 영입 경쟁은 직방, 요기요 등 플랫폼 업체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난 15일 배달 플랫폼 2위 요기요를 서비스하고 있는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는 연구개발(R&D) 센터의 평균 연봉 인상률을 예년보다 2~3배 이상 높게 책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대 인상 금액은 2000만원에 달한다.

요기요는 R&D 조직을 3년간 최대 1000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직방도 개발자 초봉을 6000만원으로 올렸고,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도 개발자 최저 연봉을 5000만원(스톡옵션 추가)으로 보장하기로 했다.

"5년차에 연봉 1억 수두룩"…코로나19에 귀해진 개발자

판교 IT 업계에서 이처럼 파격적인 연봉 대우를 내세우는 이유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개발자 수요가 많아진 영향이다. 금융, 유통, 엔터 등 본업이 IT가 아닌 업종에서도 비대면 수요가 급증하면서 IT 업계 개발자 구인난이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IT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업계 전반에서 능력 있는 개발자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대기업에 준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내건 중소·중견 IT 업체들이 적지 않다. 중소·중견 IT 기업들의 이례적인 연봉 인상이 이어지자 최근 구직자들 사이에선 IT 기업 서열 은어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민) 대신 '엔크쿠직배'(엔씨 크래프톤 쿠팡 직방 배민)라는 말도 등장했다.

게임업계 연봉 인상 행렬에 기존 '빅2'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다소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업계 최고 대우를 내세우고 있는 이들과 연봉 차이가 거의 나지 않게 되면서다.

IT 업계 개발자 몸값은 당분간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IT 분야 인력 부족 규모는 1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까지 국내 개발자 2만8994명의 인력이 모자란다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정규직 고급 개발자 연봉은 평균 5000만원이었는데, 이제는 이 금액이 신입 연봉 수준으로 내려앉았다"며 "5년차만 넘어도 연봉 1억원대를 받는 개발자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