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 또 900억 유치…유니콘 3~4개 더 나온다
스마트폰 금융 앱(응용프로그램) ‘토스’로 널리 알려진 비바리퍼블리카. 서울 테헤란로의 이 회사 사무실 입구엔 사람만 한 유니콘 모형이 있다. 유니콘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업계에서 기업가치가 10억달러(약 1조원) 이상인 곳을 상징하는 별명. 올초 만난 이승건 대표에게 “유니콘이란 걸 홍보하려 만든 거냐”고 묻자 그는 “어휴, 아니에요!”라고 손사래를 쳤다.

▶본지 12월5일자 A1, 2면 참조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스타트업들에 선물한 거예요. 벌써 그렇게 뽕 맞으면(자아도취하면) 큰일나죠.” 당시에도 토스는 유망 핀테크(금융기술) 스타트업으로 주목받았지만 “갈 길이 먼데 자만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1년이 채 안 돼 이 회사는 ‘진짜 유니콘’이 됐다. 비바리퍼블리카는 10일 “세계적 투자회사로 꼽히는 클라이너퍼킨스, 리빗캐피털 등에서 총 8000만달러(약 9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며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12억달러(약 1조3000억원)로 인정받았다”고 발표했다.

국내 핀테크 업종에서 유니콘이 나온 건 처음이다. 토스가 지난해 3월 미국 페이팔에서 투자받을 당시 몸값이 1300억원 정도였는데, 1년9개월 만에 10배로 뛰었다. 알토스벤처스, 베세머벤처파트너스, 굿워터캐피털, KTB네트워크, 페이팔 등 기존 투자자도 이번에 추가로 돈을 넣어 토스의 누적 투자유치액은 약 2200억원으로 불어났다.

2015년 간편송금 앱으로 출발한 토스는 계좌·보험 조회, 부동산·펀드·해외주식 투자, 대출 중개 등 금융업 전반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가입자 1000만 명, 누적 송금액 28조원을 넘겼고 내년엔 증권사도 세울 계획이다. 이 대표는 “이젠 간편송금이란 수식어를 떼고 ‘금융 플랫폼’으로 대중에게 인식되고 싶다”며 “사용자에게 최고 만족을 주는 금융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지난 몇 년 동안 ‘유니콘 가뭄을 겪고 있다’(미국 포브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규 유니콘의 명맥이 끊겨 있었다. 하지만 토스처럼 척박한 창업 생태계에서도 성과를 내는 스타트업이 나오면서 희망적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가 집계하는 ‘세계 유니콘 클럽’ 목록을 보면, 총 292개 업체가 이름을 올렸고 미국(141개)과 중국(81개) 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선 2014년 쿠팡과 옐로모바일 이후 4년 가까이 정보기술(IT) 유니콘이 전무했다. 하지만 지난 8월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게임업체 블루홀이 5억달러(약 5조6000억원) 가치를 인정받아 새로 진입했다.

업계에서는 내년까지 서너 개의 유니콘이 더 탄생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음식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개발한 우아한형제들은 한동안 공식적인 기업가치가 산정되진 않았으나 1조원대 후반까지 오른 것으로 투자업계는 추정했다. 방탄소년단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숙박예약업체 야놀자 등의 몸값도 1조원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된다. 쿠팡은 지난달 소프트뱅크에서 추가 투자를 유치하면서 90억달러(약 10조원)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올 1월 “벤처생태계를 혁신해 2022년까지 유니콘 8개를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전문가들은 교통, 금융, 의료 등 신산업 규제를 과감하게 푸는 동시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자금시장 환경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벤처캐피털(VC) 대표는 “스타트업이 유니콘 단계로 성장하려면 시리즈 C·D·E 등 수백억원 단위의 ‘통 큰 투자’가 필수적”이라며 “국내에는 이를 소화할 수 있는 VC가 매우 드물다”고 했다. 창업자들이 국내에서 ‘치킨 게임’에 빠지지 말고 더 넓은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택경 메쉬업엔젤스 대표는 “좁은 내수시장에서는 유니콘 배출에 한계가 있는 만큼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