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천문시계는 일찍이 중국 한나라의 장형이 처음 만든 이래 수동 구동장치를 갖고 시간 측정뿐 아니라 천체의 운행을 기계적으로 재현한 매우 독특한 형태의 시계였다.

이것들은 상당한 규모의 기계시스템으로서 시간 측정 및 기계제작 기술 수준을 대변하는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왕조가 가장 흥했을때 하나 정도씩 제작됐다.

그 중에서도 조선 세종 때에 만들어진 흠경각루(欽敬閣漏)는 동아시아 천문시계의 최고 걸작이라 할만큼 구조의 정교함과 시보 기능의 다양함이 돋보이는 것이었다.

흠경각루는 한 가운데 솟아 있는 일곱 자(약 1.4m) 높이의 산 주위에 평지가 펼쳐진 모습이다.

종이를 발라 만든 산의 상하 사방에 천문시계의 각 부분이 골고루 배치돼 있다.

우선 산허리 위로 뜨고 지는 해는 계절에 따라 고도와 방향이 바뀌도록 돼 있으며 산중턱에는 4명의 옥녀(玉女)와 사신(四神)이 하나씩 짝을 이뤄 동서남북에 자리잡고 하늘의 시각을 땅에 전하고 있다.

산기슭에서는 12쌍의 지신과 옥녀가 산을 둘러싼 채 시각에 맞춰 교대로 땅 속에서 솟아오르면서 하늘의 시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주변의 평지에는 농촌의 사계절을 모형으로 만들어 사방에 늘어놓았다.

남쪽 산기슭에 돈대를 쌓아 사신과 무사 모양의 인형으로 종 북 징의 소리를 울리게 해 12시와 경점을 알렸다.

이렇게 산마루로부터 평지에 이르기까지 천 지 인을 적절히 배치한 것은 오직 장영실의 흠경각루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내부의 작동기구가 정교하게 설계됐기에 가능했다.

흠경각루에 발휘됐던 선진 기계 기술은 현종 10년(1669년)에 이민철과 송이영의 손을 거쳐 새로운 형태의 혼천시계로 부활했다.

한영호 건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