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 이후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글로벌 가격이 요동쳤다. ‘자원 부국’인 러시아 제재 이슈를 둘러싸고 서방과 러시아 간에 신경전이 계속되면서 에너지 수급 불안정 우려가 증폭됐기 때문이다. 에너지값 급등은 역설적이게도 러시아 곳간을 불리는 결과를 낳았다.

○에너지 특수 끝났다

푸틴에 날아든 '침략 청구서'…러시아 물가 11% 폭등
하지만 전쟁 2년차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러시아의 고유가 호시절이 끝났다”며 “개전 이후 국제 사회의 각종 제재 대상이 된 러시아 경제가 벼랑 끝 위기에 몰렸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를 탈출한 전직 중앙은행 간부 알렉산드라 프로코펜코는 “러시아 경제가 장기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경제 위기의 가장 큰 배경으로는 에너지 가격 하락세가 꼽힌다. 당초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성을 버릴 수 없는 유럽의 단결력이 결국 와해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러시아는 작년 4월 한 달 새 에너지 수출로 1조8000억루블(약 30조원)가량을 벌어들이는 등 상반기까지만 해도 고유가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유럽이 작년 말 러시아 에너지에 대해 가격상한제도를 도입하는 등 국제 사회는 러시아 제재를 위해 단합했다.

수출길이 막히고 에너지 가격까지 안정화되자 러시아는 중국과 인도 등에 정상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에너지를 팔아야 했다. 러시아가 지난달 판매한 우랄산 원유 가격은 배럴당 49.59달러로 국제 기준물인 브렌트유(배럴당 80달러)의 60% 수준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올해 1월과 2월 러시아 정부가 에너지로 벌어들인 수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가량 줄었다. 이 여파로 재정 상황도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올해 1~2월 러시아 재정은 340억달러(약 44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다급해진 러, 출국세까지

각종 경제 지표도 난맥상을 가리키고 있다. 루블화 가치는 지난해 11월 이후 20%나 하락했다. 최근 단행한 30만 명 규모의 징집령 탓에 러시아 기업의 50% 정도가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것으로 추산됐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러시아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보다 6.7% 감소했다. 2015년 이후 최악의 수치다. 지난달 신차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62% 급감했다.

일각에선 지난해 러시아 경제가 ‘선방했다’는 분석도 제기했다. 2021년에 비해 2.1% 역성장하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의 군비 지출로 생산량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론이 나온다.

러시아 정부의 전비 관련 지출은 결국 물가 상승을 자극할 것이란 우려를 키우고 있다. 러시아의 2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1%로 치솟았다. 비엔나국제경제연구소의 바실리 아스트로프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가 처한 경제 위기는 1~2년 내로 끝날 양상이 아니다”며 “러시아 경제는 (단기 침체와는) 완전히 다른 경로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유럽연합(EU)에서 러시아산 에너지의 공백을 미국이 채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U 통계청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유럽에 수입된 원유의 18%가 미국산이었다. 개전 직전인 작년 1월만 해도 31%를 차지했던 EU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은 4%로 쪼그라들었다. 재정 상태가 열악해진 러시아는 이날 서방의 자국 제재에 동참한 ‘비우호국’ 출신 외국인 투자자에 대해 출국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비우호국 국적의 기업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철수하려면 자산 평가 보고서에서 제시된 시장 가치의 최소 10%를 러시아 연방 예산에 기부하라는 결정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