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회원국이지만 친러 행보…외무회담 이어 정상회담 주선 의지
우크라 지원 통해 서방과 관계 개선…EU 가입 협상에도 긍정적 효과
[우크라 침공] '서방·러시아 간 줄타기' 터키, 평화중재 잰걸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전쟁을 끝내려는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터키의 평화 중재 역할이 주목된다.

터키는 서방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지만 친러시아 행보로 미국 등 서방과 갈등을 빚어왔다.

터키는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고 경제 및 군사협력 관계를 확대했다.

터키는 최근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면서 러시아에 더욱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분쟁 당시 미국이 러시아군을 저지하기 위해 흑해에 전함을 투입하려 했을 때 터키는 러시아 편을 들며 진입을 막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터키는 우크라이나 편을 들며 서방측에 서는 모양새다.

터키는 러시아 군함의 흑해 진입을 막기 위해 외국 군함에 대한 흑해 진입 통제권을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위기가 고조되던 지난달 3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고 공격용 드론을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제의했다.

[우크라 침공] '서방·러시아 간 줄타기' 터키, 평화중재 잰걸음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리는 기꺼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정상회담이나 실무회담을 주선할 것"이라며 "터키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과 주권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양국은 이날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8개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우크라이나에 합작공장을 설립해 터키제 바이락타르(Bayraktar)를 잇는 차세대 공격용 무인기 안카(ANKA) 등을 공동 생산하기로 합의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쟁 발발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물론이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등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평화 중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6일 에르도안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통화한 후 터키 대통령실은 "현 상황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준비가 돼 있다"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도 접촉하고 있고, 양측의 포괄적 협상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터키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외무장관 회담을 주선했다.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리는 외교포럼을 계기로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지난 10일 3자 회담 형식으로 만났다.

개전 이후 최고위급 접촉인 이 회담에서 구체적인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 놓는 등 협상의 모멘텀은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터키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하고 평화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러시아와 4차례에 걸쳐 협상을 진행한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터키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안보 조약을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 침공] '서방·러시아 간 줄타기' 터키, 평화중재 잰걸음

우크라이나 집권당 '국민의 종'은 1994년 체결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한계점을 지적하며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새 조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여당은 지난 8일 성명에서 "나토가 우리를 받아들일 때까지 우크라이나에 완전한 안보를 확보해줄 구체적 조약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조약은 우크라이나의 안보에 대한 보증국들의 구체적인 정치·경제·군사적 조치를 명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보증국으로 미국과 터키 등이 나설 수 있으며,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의 국가성을 인정하고 우리나라를 위협하지 않겠다고 보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영국·터키 등이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 동맹의 '이단아'였던 터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서방과 관계 개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움직임이 터키의 숙원인 유럽연합(EU) 가입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970년대부터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려고 시도한 터키는 1987년 가입을 신청한 이래 30년 넘게 EU 회원국이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터키는 2002년 의회에서 사형제 폐지와 쿠르드어 방송 허용 등 EU가 제시한 가입 협상 개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개혁법안을 통과시켰고 2004년 12월 비로소 후보국 지위를 얻었다.

EU와 터키는 2005년부터 가입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키프로스 영토 분쟁과 독일, 프랑스 등의 반대로 협상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2016년 쿠데타 진압 후에는 관련자 투옥과 해고, 기관 폐쇄, 기본권 제한 조처가 대대적으로 이어지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서방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EU 가입 협상은 교착됐다.

가입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도 '유럽 국가'임을 강조하는 터키의 EU 가입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리는 유럽과 함께 미래를 계획한다.

EU 가입이라는 최종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