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고율 관세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미·중 간 기존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는 중국에 대해 슈퍼 301조(무역법 301조)를 발동할 수 있다고도 압박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 9개월 만에 처음 나온 대중 무역정책이지만 구체성이 부족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대중 강경 방침을 그대로 이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中 제품에 고율관세 그대로…바이든 '트럼프式 강경책' 고수

바이든표 첫 대중 무역정책 공개

캐서린 타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4일(현지시간)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사실상 첫 대중 통상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타이 대표는 우선 중국을 향해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지난해 1월 체결된 미·중 1단계 무역합의를 준수하라고 촉구했다. 중국이 2020~2021년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를 2017년보다 2000억달러어치 더 구매하는 대가로 미국은 28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축소·철회하기로 한 게 핵심이다. 하지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중국의 합의 이행 비율은 59%에 불과했다. 올 들어 지난 8월 말까지 이행률은 69%에 그쳤다.

이에 대해 타이 대표는 “우리는 1단계 무역합의가 이행되도록 노력하는 한편 1단계 무역합의에서 다루지 않은 중국의 국가 중심적이고 비시장적인 무역 관행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 같은 광범위한 정책 문제를 중국 정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고, 필요할 경우 새로운 수단도 개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무역법 301조를 새로 발동할 것이란 관측이 있다’는 질문에 “상황에 달려 있고 가능한 모든 수단이 내게 있다. 301조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고 모든 가능한 수단을 살필 것”이라며 그 가능성을 열어뒀다.

무역법 301조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고율 관세 등 보복 조치를 위한 무기로 썼던 조항이다. 미국은 이 법에 따라 불공정 무역 관행에 해당하는 사안을 대상으로 상대국에 시정 요구와 보복 조치를 할 수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고위 당국자는 이날 타이 대표의 발표 전 브리핑에서 “중국과의 화상 회담을 곧 추진하고 대중 고율 관세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1단계 합의 준수 압박을 위한 신규 관세 부과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지만 미국이 2단계 합의를 위한 협상을 추진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부 이견으로 발표 늦어져”

타이 대표는 중국과의 무역 긴장 심화가 미국의 목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표적 관세 배제 절차’를 재개할 뜻을 내비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절차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중국산 수입품을 대체할 방안을 찾지 못한 미국 기업에 예외적으로 고율 관세 적용을 면제해준 제도다. 작년 말 시한이 만료됐지만 바이든 행정부 들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타이 대표는 “내가 이전 행정부의 시도를 실패한 것으로 규정했다고 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며 “다만 우리가 갈 곳으로 이끌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의 탈동조화(디커플링) 여부에 대해선 “국제 경제의 관점에서 현실적 결과라 보지 않는다”며 “미국이 추진하는 건 일종의 재동조화(리커플링)”라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에 대해 로이터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무역정책이 트럼프 시절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의 대중 정책에 구체성이 결여돼 USTR에 변화를 기대한 이들이 좌절했다”고 밝혔다. SCMP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통상전략 발표가 지연된 것은 내부 이견 때문”이라며 미국이 대중 무역 접근에서 당근과 채찍 전략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