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로 냉난방 수요 폭발
코로나로 증설 중단돼 공급 정체
천연가스 선물 전년比 96% 급등
공급난에 값싼 연료로 눈돌려
석탄 선물 10년 만에 '최고가'
유가도 이란發 악재에 소폭 상승
천연가스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올 들어 기록적인 추위와 더위에 따른 가정용 수요와 경제 재개로 인한 산업용 수요가 급증하는 데 반해 공급은 정체 상태이기 때문이다. 천연가스 가격이 1년 만에 두 배로 뛰자 대체재로 석탄이 각광받으면서 석탄 가격도 덩달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상기후·경제 재개에 따른 수요 급증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천연가스 선물(7월물)은 장중 한때 100만BTU(열량단위)당 3.214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18일 종가는 3.215달러로 1년 전보다 96% 뛰었다. 여름철 시세로는 2017년 이후 최고가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유럽 시세의 기준이 되는 네덜란드 천연가스 선물(7월물) 가격도 올 들어 두 배로 올랐다.
산업용과 가정용으로 두루 쓰이는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이상기후에 따른 수요 증가가 지목된다. 지난겨울 미국과 유럽 등에 한파가 닥쳐 난방 수요가 늘어나면서 천연가스 비축량이 줄어들었다. 미국의 천연가스 비축량은 지난해보다 16% 적으며 5년 평균치보다 4.9% 부족하다. 유럽의 천연가스 재고량은 최근 5년간 평균보다 25% 적다.
여기에 최근에는 기록적인 무더위가 덮치며 에어컨 등 냉방기기 가동률이 급등해 천연가스 수요가 더욱 늘어났다. 이달 들어 미 서부지역 최고기온은 40~50도에 달한다. 가뭄으로 수력발전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91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맞은 브라질은 전력 공급의 70%를 차지하는 수력발전을 할 수 없게 되자 미국으로부터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 경제가 재개되면서 산업용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반면 공급은 정체 상태다. 미국에서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2019년 12월 정점을 찍은 뒤 좀처럼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 48개 주에서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지난 3월까지 11개월 연속으로 줄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천연가스 가격이 100만BTU당 1.5달러대로 폭락하자 천연가스 회사들이 증설 등 투자를 중단한 여파다.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면서 레인지리소시스, 안테로리소시스 등 관련 기업 주가는 최근 3개월 동안 40% 이상 뛰었다. WSJ는 전문가 의견을 인용해 당분간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천연가스 부족하자 석탄 수요 늘어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대표적인 화석연료인 석탄 수요가 늘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에 민감한 유럽연합(EU) 회원국까지 석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스위스 에너지회사 악스포솔루션스의 앤디 솜머 애널리스트는 “유럽의 석탄 사용 비중이 기존 10%에서 최근 15%로 올라갔다”고 전했다.
여러 국가가 가격이 뛴 천연가스 말고 석탄을 찾으면서 발전용 석탄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호주 뉴캐슬의 발전용 석탄 선물 가격은 최근 한 달 동안 27% 오르며 10년 만의 최고가를 기록했다. 최근 1년 동안 두 배 이상 뛰었다.
한편 국제 유가도 상승세를 지속했다. 이날 런던선물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8월물은 전날보다 0.6% 오르며 배럴당 73달러를 넘겨 거래됐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을 위한 이란과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등의 회의가 이날 합의 없이 중단되면서 이란산 원유가 당분간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 등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연료비가 치솟고 있지만 정부는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전기요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이 이어지고 있고,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 상승)이 우려된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일각에선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전기료 인상 부담을 한국전력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전 2분기에 이미 적자한전은 3분기 최종 연료비 조정단가를 2분기와 마찬가지로 ㎾h당 -3원으로 책정했다고 21일 발표했다. 연료비 조정단가가 이렇게 결정되면 가정과 기업에서는 전기료가 동결된다. 지난 2분기에 이은 두 분기 연속 전기료 동결 조치다.한전은 조정단가를 2분기 ㎾h당 -3원에서 3분기엔 0원으로 높여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했다. 올 3분기 전기료에 반영되는 3~5월 두바이유 평균 가격이 배럴당 64달러 수준으로, 2분기 기준인 작년 12월~올해 2월 평균 가격(55달러)보다 16%가량 오르는 등 연료비가 급등해서다. 평균 350㎾h의 전력을 사용하는 4인 가구는 한 달 전기료를 1050원 올려야 한다는 게 한전의 분석이었다.하지만 산업부는 한전의 요구를 묵살했다. 연료비 조정단가를 2분기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해 전기료를 동결하는 결정을 내렸다. 코로나19 장기화와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게 이유다.전기료 동결에 따른 부담은 한전이 떠안게 됐다. 연료비 상승을 전기료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한전의 2분기 실적 전망은 어둡다. 증권사들은 한전이 2분기 8770억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같은 적자는 3분기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한 한전은 올해 적자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연간 연료비 조정단가가 ㎾h당 1원 달라지면 한전 이익은 약 5000억원 변동될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에선 즉각 반응했다. 3분기 전기료 동결이 발표된 이날 한전 주가는 지난 18일 대비 6.88% 떨어진 2만5050원에 마감했다.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는 “한전을 주식시장에 상장시켜놓고 전기료를 정부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했다. 연료비 연동제 무시하는 정부정부는 올해 전기료 합리화의 일환으로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유류 등 전기 생산에 들어간 연료비 변동분을 3개월 단위로 전기료에 반영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11년 도입하려 했지만 유가 상승 등의 이유로 시행되지 못했다.정부가 올해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서두른 것은 에너지 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올해 상반기에만 전년 대비 1조원의 전기료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었다. 전기료 인상에 따른 가격저항을 막으면서 원가 연동제를 도입할 절호의 기회로 본 것이다.하지만 전기요금 합리화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연료비 연동제는 작동을 멈췄다. 제도가 이미 무력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연료비 연동제 파행 운영은 전력시장 규제 전반에 대한 정책 신뢰도 역시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2분기와 3분기 연속해서 연료비 연동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제도 자체가 무산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3분기 전기료 동결에도 불구하고 다음달부터 일부 소비자의 전기료 부담은 늘어날 전망이다. 7월부터 월 200㎾h 이하 전력을 사용하는 약 625만 가구의 전기요금이 기존 대비 2000원 오른다. 전기료 할인액이 4000원에서 2000원으로 줄기 때문이다. 주로 1~2인 가구가 대상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사회취약계층 보호라는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대부분 1인 가구에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며 정책 변경의 배경을 설명했다.최근 보급이 늘고 있는 전기차의 충전 기본요금 할인율은 기존 50%에서 다음달부터 25%로 줄어든다. 전기차 전력량 요금에 적용하던 할인율도 30%에서 다음달부터 10%로 줄일 예정이다. 이로 인해 전기차 운행자들은 한 달에 1만~2만원 정도를 더 부담해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국제 유가 등 전력 생산에 필요한 연료비가 치솟고 있지만 정부는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전기요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정부는 물가 상승에 따른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전기료 인상 부담을 한국전력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전은 3분기 최종 연료비 조정단가를 2분기와 마찬가지로 ㎾h당 -3원으로 책정했다고 21일 발표했다. 조정단가가 이렇게 결정되면 가정과 기업에서는 전기료가 동결된다.한전은 국제 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유연탄 등 연료비가 상승하고 있어 조정단가를 2분기 ㎾h당 -3원에서 3분기엔 0원으로 높여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했다. 평균 350㎾h의 전력을 사용하는 4인 가구는 한 달 전기료를 1050원 올려야 한다는 게 한전의 분석이었다.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임의조정권을 발동해 2분기와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코로나19 장기화와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정부는 전기료를 책정할 때 원유, LNG 가격 변화를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올해부터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가 이를 두 분기 연속 위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한전에 떠넘긴 부담은 결국은 국민이 짊어져야 하는 몫”이라며 “정부가 에너지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정을 했다”고 지적했다.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한국은 올해 5월 유독 강수량이 이전과 비교하면 많았다고 한다. 반면 태평양 건너 미국은 대지가 쩍쩍 갈라지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 인근은 저수지 수위가 낮아져 개인 보트들이 이동하지 못하고 갇혀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는 4월부터 시작된 가뭄으로 저수지나 지하수가 말라가고 있어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피해가 엄청나다. 이 지역 가뭄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는 애그플레이션캘리포니아는 미국 채소 생산의 3분의 1, 과일·견과류 생산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사태로 미국 내 농산물 가격이 급등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만 가뭄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미의 브라질 또한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강수량이 예년보다 크게 줄어 커피와 오렌지 등의 생산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커피와 오렌지 생산국이다. 전체 커피와 오렌지의 약 3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브라질과 같이 넓은 농토에서 농산물을 대량 생산하는 나라들이 가뭄으로 생산량이 감소한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곡물·채소·과일 등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에 일정량의 소비를 유지하는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공급이 크게 줄어들어도 수요는 일정 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에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용어다. 농산물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 충격농산물도 원자재에 속하기 때문에 농산물 가격 상승은 이를 원료로 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생산 비용을 상승시키게 된다. 기업은 늘어난 비용 때문에 생산을 줄이거나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반영하게 된다. 최근에 농산물 가격뿐만 아니라 구리, 철광석 등 산업에 사용되는 각종 원자재와 이를 운반하는 해운 운임비도 상승하여 ‘총공급(Aggregate Supply)’ 측면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를 ‘공급 충격(Supply Shock)’이라고 한다. 공급 충격이란 상품이나 서비스의 급격한 공급 증가 또는 감소에 따른 가격 변화를 말한다. 이때 미국과 브라질의 가뭄은 총공급곡선이 좌측으로 이동(그림)하는 데 영향을 주어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에서 물가도 동시에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발생시킬 수 있다. 1970년대 석유 위기 당시 원유 가격의 급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세계적으로 발생하기도 했다.한국 또한 농산물을 자급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나 브라질의 가뭄으로 각종 농산물 가격이 요동치게 되면 이를 원료로 수입하는 국내 기업의 생산 비용도 상승하게 된다. 생산자 수입물가의 상승은 장기적으로 소비자 물가에도 점진적으로 반영된다. 총공급 측면에서의 물가 상승이 기업 측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수요에도 영향을 준다. 세계적으로 풀린 유동성하지만 최근 물가 상승 속도가 높아진 근본 원인을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원자재 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은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각국이 위기가 닥칠 때마다 시중에 푼 엄청난 유동성이 제일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돈은 풀었지만, 경기 심리가 악화되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실물 경제가 아닌 주식, 부동산, 원자재와 같은 자산 시장으로 유동성이 흘러가 가격만 높이고 있다. 특히 원자재의 경우 가격 상승 속도가 심상치 않다는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물가만 상승하고 경기는 살아나지 않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화될 수도 있기 때문에 통화당국은 최근의 물가 상승 추이를 면밀히 관찰하며 정책 대응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