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거대 기술기업(빅테크)을 겨냥한 디지털세 징수를 놓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또다시 정면 충돌하고 있다. EU는 빅테크 업체들이 유럽에서 막대한 수익을 내면서도 편법을 동원해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자국 기업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휴전 끝났다"…美-EU '디지털稅 전쟁' 재점화
미국 관세당국은 올해 1월 6일부터 프랑스의 주요 수출품인 화장품, 핸드백 등 13억달러어치 상품에 보복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고 3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프랑스가 미국의 대표 기업인 아마존, 페이스북 등에 최근 디지털세를 부과한 데 따른 대응 성격이다. 미국 정부는 “우리 기업들을 표적으로 삼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프랑스 외 디지털세를 부과할 예정인 다른 10개 국가에도 보복 관세를 매길 준비를 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일명 ‘구글세’로도 불리는 디지털세는 지난 수년간 EU뿐만 아니라 인도 브라질 등에서 논란이 돼왔다. 다국적 정보기술(IT) 업체들이 현지 진출 국가에 수익을 거의 남기지 않는 편법을 동원해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트위터, 페이스북 등 상당수 빅테크 업체는 유럽 본사를 법인세율이 최고 4.5%에 불과한 아일랜드에 두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이 생산·판매 수익을 발생시키는 개별 국가에 적정 세금을 납부하는 식으로 기여해온 관행과 다르다는 게 이들 국가의 주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작년 10월 법인이 없는 대형 디지털 기업의 수익에 대해서도 각국이 과세 권한을 갖는다는 일반 원칙을 마련하기도 했다.

EU 국가 중에서 디지털세 부과에 가장 적극적인 것은 프랑스다. 세계에서 연매출 8억4000만달러 이상을 올리는 디지털 기업을 대상으로 프랑스 내 매출의 3.0%를 세금으로 물리는 법안을 2019년 7월 통과시켰다. 미국과의 협상을 전제로 징수 시점을 미뤄오다 미 정부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2019년 1월부터 발생한 매출까지 소급 적용해 세금을 때린 것으로 알려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빅테크) 기업들이 공정하게 세금을 내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몰아세웠다.

프랑스 외에도 이탈리아 영국 터키 오스트리아 등도 디지털세 관련 법안을 마련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스페인은 올해 1월 16일부터 디지털세를 부과한다. 유럽의 디지털세는 연매출이 최소 수억달러에 달하는 거대 IT 기업이 대상이다. 대다수가 미국 기업이다. 세율은 국가별로 매출의 2.0~7.5%다. 현재 디지털세를 도입했거나 추진 중인 국가는 20여 개국에 이른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보를 지낸 메이널 코윈은 “미국과 EU 국가들은 서로 그만하자는 얘기가 나올 때까지 심각한 통상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WSJ도 “디지털세를 둘러싼 데탕트(화해) 기간이 사실상 끝났다”고 했다.

디지털세 갈등은 1월 20일 출범하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도 작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맞닥뜨린 최대 통상 현안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보호무역주의를 주도해온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역시 디지털세 도입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디지털세 갈등은 세계 경제에도 충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OECD는 지난해 10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디지털세 분쟁이 지속되면 글로벌 생산량이 1%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