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글로벌 석학에게 듣는다
(3) '아베노믹스 브레인' 다카하시 스스무 일본종합연구소 이사장

성장 주도권, 정부→민간 '바통터치' 필요
법인세 인하 등 기업인 자신감 키워줘야
美 양적완화 축소로 엔低 당분간 지속
中 성장 둔화·유럽 디플레 '걱정거리'
"日, 한 두 분기 마이너스 성장 불가피…아베노믹스 '버전업' 할 때 됐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의 작년 성적은 화려하다. 엔고(高)라는 고질병을 단숨에 털어냈고, 주가도 한 해 동안 50% 이상 끌어올렸다. 문제는 올해다. 소비세율 인상으로 내수 위축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중국의 성장세 둔화 등도 걱정거리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작년에 비해 반토막이 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본 최대 연구기관인 일본종합연구소의 다카하시 스스무 이사장은 올해 일본 경제의 최대 화두로 ‘바통터치’라는 단어를 제시했다. 정부에서 민간으로 성장의 주도권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넘어가느냐에 따라 일본 경제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아베노믹스의 최고 브레인’인 그를 지난달 24일 일본 도쿄에서 만났다.

▷올해 글로벌 경제를 좌우할 이슈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의 성장세 둔화다. 일단 성장률은 7.7% 정도로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잠재적인 위험 요인이 적지 않다.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부동산 거품 붕괴 시나리오가 대표적이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성장률도 7%대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도 중국에는 악재일 수 있다. 급격한 자금 유출이 일어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유럽에서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하락)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기업들의 임금 상승과 고용 확대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일본 경제는 어떻게 보나.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소비세율 인상의 영향이다. 한두 분기 정도의 마이너스 성장은 불가피하다. 올해 연간 성장률도 지난해(2.6%)보다 낮은 0.9%(일본종합연구소 예상치)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전처럼 다시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선 일본 정부가 5조5000억엔 규모의 추가적인 경제대책을 마련했다. 내수 위축을 어느 정도 완화할 거라고 본다. 1998년 소비세율을 인상하고 성장률이 급락했던 사례를 들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에는 소비세율 인상 직후 금융권의 불량채권 문제와 아시아 외환위기 등의 대형 악재가 겹쳤다. 아베노믹스로 경기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낙관적인 전망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아베노믹스가 ‘경제학’이 아닌 ‘심리학’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국민들에게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줬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심리학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 어느 정권도 이 과제를 해결해내지 못했다. 예를 들어 1년 전만 해도 올해 경제성장률을 대부분 0%대로 예상했다. 기업인들도 일본은 기껏해야 0.5% 정도 성장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소비세 증세라는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1% 안팎의 성장은 가능할 것으로 보지 않나. 아베노믹스가 1년 동안 이뤄낸 매우 큰 변화다.”

▷역대 정권의 경제정책과는 무엇이 달랐나.

“과거에도 몇 차례 금융완화 정책은 시행됐다. 그러나 인상적인 성과를 끌어내진 못했다. 아베노믹스와의 가장 큰 차이는 접근 방식이다. 예전엔 돈을 풀더라도 시장의 반응을 봐가면서 단계적으로 했다. 아베노믹스는 달랐다. 한꺼번에 대규모로 물량 공세를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재정정책과 성장전략을 패키지로 제시했다. 시장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도 간단명료했다. ‘세 개의 화살’이라든지 ‘2년 안에 물가상승률을 2%로 높이기 위해 시중 통화량을 2배로 늘린다’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시장이 정부의 의지를 피부로 느꼈고, 비로소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아직 경기의 온도차가 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엔저(低)와 주가 상승으로 대기업들은 수출이 늘고 이익이 증가하는 추세다. 부유층을 중심으로 ‘자산효과’(주식 부동산 등이 오르며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임금은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경기회복을 실감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방은 사정이 더욱 좋지 않다. 대기업의 이익이 중소기업에까지 이어지고, 이게 다시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로 일본의 내수시장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것도 경기회복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다.”

▷결국은 임금 상승이 관건인데 어떻게 전망하나.

“지금까지도 기업의 이익 증가 국면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기업들이 설비투자와 임금 인상은 하지 않고 묻어 두기만 했다. 임금이 안 오르니까 내수는 더욱 살아나지 않고, 이로 인해 기업은 이익이 늘지 않아 설비투자를 망설이거나 해외로 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결국 기업의 이익을 설비투자와 임금 인상으로 연결하지 않으면 일본 경제가 살아날 수 없는 셈이다. 기업들이 돈을 풀게 하려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만으로는 부족하다. ‘확신’의 단계까지 나아가야만 한다. 법인세 인하 등을 통해 기업 경영인들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게 절실한 이유다. 물론 아직은 불확실한 부분이 크다. 제조업의 가동률은 여전히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을 들여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아베노믹스의 향후 과제는.

“올해는 아베노믹스의 ‘버전업’이 필요하다. 세 개의 화살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네 번째, 다섯 번째 화살을 만들어야 한다. 민간의 활력을 본격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다. 작년까지는 성장을 정부가 주도했다고 봐야 한다. 금융완화 정책을 폈고, 재정대책을 실시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기업을 중심으로 민간이 나서서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정부에서 민간으로 ‘바통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전략의 내용도 다양하게 보강돼야 한다. 2020년 도쿄올림픽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림픽은 도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외 관광객을 일본에 끌어오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일본 전역이 노력해야 한다.”

▷올해도 여전히 환율이 관심이다.

“엔화 약세는 지속될 것으로 본다. 가장 큰 요인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다. 반면 일본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금융완화를 지속할 전망이다. 이로 인해 갈수록 미·일 금리차는 확대될 것이다. 달러 대비 엔화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본의 무역수지가 계속 적자를 내고 있는 것도 엔화 약세를 점치게 하는 배경이다. 다만 지난해처럼 큰 폭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달러당 100엔대 초·중반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경제 전반을 위해서도 이 정도의 환율이 가장 적당하다. 추가적인 엔저는 수입물가를 높여 경제에 부담이 된다.”

▷시장에서는 추가적인 금융완화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소비세율이 인상되는 올 2분기(4~6월)가 관건이다. 이때 경기가 예상보다 더 부진에 빠지면 추가적인 금융완화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도 ‘2년 내 물가상승률 2%’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금융완화가 충분한 상태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더 강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목표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2년 내’라는 기간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 쪽에서도 최근엔 ‘2년 내’라는 문구가 사라지는 분위기다.”

▷금융완화가 일본의 국가부채 문제를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일본 정부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2015년까지 기초재정수지 적자폭을 절반으로 줄이고, 2020년에 흑자로 전환한다는 재정건전화 계획도 착실히 진행 중이다. 일단 2015년 목표는 달성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작년에도 적자폭이 많이 줄었다. 아베노믹스로 세수가 늘어난 덕분이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2020년까지 유지될 수 있느냐다. 작년부터 65세 이상 고령자 그룹에 합류하기 시작한 단카이 세대(2차대전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후기 고령자’(75~84세)로 넘어가는 202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사회보장 비용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게 된다. 2% 정도의 성장이 꾸준히 필요한 이유다. 세금에만 의존해서는 소비세율을 20% 이상으로 올리더라도 불가능하다.”

다카하시 이사장은
민간기업 출신 최초 경제정책 입안 참여…실무-이론 두루 갖춰

"日, 한 두 분기 마이너스 성장 불가피…아베노믹스 '버전업' 할 때 됐다"

1953년생으로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스미토모은행을 거쳐 1990년부터 일본 최대 연구기관인 일본종합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와세다대학과 긴키대학 등에서 겸임교수로도 활동했다. 2005년에는 민간기업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내각부 정책총괄관(국장급)으로 임명돼 경제정책 입안 과정에 참여했고, 2009년에는 내각부 행정쇄신회의 멤버로 일했다.

2011년 일본종합연구소 이사장에 오른 뒤 작년부터 아베노믹스를 설계하는 기능을 하는 ‘내각부 경제자문회의’ 4명의 위원 중 한 명으로 활동 중이다. 경제 및 재정정책과 관련해서는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일본 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일요토론’(NHK)과 ‘월드비즈니스 서치라이트’(TV도쿄) 등 TV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출연, 아베노믹스를 대중에게 알리는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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