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철수한 광장에 시민들 모여 반정부 구호…곳곳에 `케말' 사진
주택가서도 일제히 냄비 두드리며 지지 시위…`6월항쟁' 연상케 해

터키 전역으로 확산한 반정부 시위의 중심인 이스탄불 도심 탁심광장은 말 그대로 '해방구'였다.

이번 반정부 시위의 시발점이 된 탁심광장의 '게지공원 점령'(Occupy Gezi) 시위가 3일(현지시간) 일주일째를 맞으면서 탁심광장이 관광명소에서 반정부 성토장으로 바뀐 것.
지난 1일 오후 경찰의 철수로 드넓은 광장을 점령한 시민은 곳곳에 모여 현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의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공원 곳곳을 누볐다.

또 광장 여기 저기에는 청년들이 둥글게 모여 북 장단에 맞춰 터키 전통춤을 추기도 했으며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광장 여기저기에 걸린 반정부 구호를 쓴 현수막과 피켓이 아니라면 축제의 마당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불과 사흘 전만 하더라도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탄을 마구 쏘아대며 전쟁터를 방불케 했지만 이날 광장에서 피어오른 연기는 쾨프테와 밤을 굽는 상인들의 것이었다.

기자가 한국의 연합뉴스 특파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대학생 세르필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터키 언론들이 소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면서 '형제의 나라'에 이곳 소식을 상세하게 전해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했다.

세르필씨는 "정의개발당이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어 우리는 더는 그들의 통치를 원하지 않는다"며 에르도안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번 시위는 평화롭게 집회를 하던 시민을 경찰이 무자비하게 탄압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시험기간인데도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고자 광장에 나왔다는 대학생 이르막씨는 "우리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가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것에 너무나 화가 난다"고 말했다.

기자가 현장을 카메라에 담자 어디서 왔냐고 말을 건넨 터키 일간지 사진기자는 "에르도안 총리는 독재자"라며 이번 시위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의 또 다른 근간인 현 정권의 이슬람 성향 정책 강화에 대한 반발을 보여주듯 광장 중앙에 세워진 터키공화국 수립기념 동상에는 터키 국기와 '터키의 국부'(아타튀르크)인 무스타파 케말의 사진 등이 걸려 있었다.

오스만제국 말기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터키 공화국을 건설한 무스타파 케말이 주도한 서구적 개혁 이념인 케말리즘을 지지하는 시민은 아타튀르크를 칭송하는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에 참여했다.

퇴근시간이 되자 직장인 등이 시위에 가세해 탁심광장으로 이어지는 지하철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탁심광장의 주요 진입로에는 시위대가 불에 탄 경찰차, 소방차, 이동통신사 차량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쳐 경찰의 진입을 막았다.

'가이 포크스' 마스크와 수제 방독면을 쓴 청년들은 부서진 버스 위에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이날 모로코를 방문하러 출국하면서도 자유를 외치는 시민을 극단주의자로 매도했으며 모로코 라바트에서는 "시위가 안정되고 있어 귀국할 때쯤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스탄불 주택가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시위대에 합세해 에르도안 총리 퇴진을 외치는 등 반정부 물결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낮에 청년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시위가 밤이되면서 회사원과 주부들까지 가세해 한층 가열되는 양상이다.

1987년 한국의 6월 항쟁 당시 `넥타이 부대'가 시위에 참여하면서 전국적인 반독재 시위로 발전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이날 오후 9시가 되자 이스탄불 전역의 가정집에서는 주부들이 일제히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며 시위대를 지지했다.

이스탄불 에틸레르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거리로 나와 냄비 등을 두드리며 "에르도안 총리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고 지나가는 차들도 경적을 울려 시위는 자정을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준억 특파원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