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명동으로 불리는 왕푸징 입구에 위치한 신화서점. 1층 경영서적 코너에는 미국의 잭 웰치 전 GE 회장의 경영을 주제로 한 책들이 늘 수북히 쌓여있다. 한 여점원은 "쌓아 놓으면 쑥쑥 팔려나가는 스테디셀러"라며 "직장인들은 물론 대학생도 많다"고 귀띔했다. 중국에서도 이제 세계 일류급 CEO가 되려는 젊은 경영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부실 국유기업,저급품 생산체제, 외산기술 종속, 가족기업식 지배구조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중국의 구경제 체제를 뜯어고치는 경제개혁의 주역들이다. '차이나의 잭 웰치'를 꿈꾸는 CEO, 그들이 지금 신(新)중국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 3대 자동차 회사인 둥펑자동차의 먀오웨이 사장(49). 그의 비전은 명쾌하다. "2006년까지 글로벌 5백대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자동차그룹을 만들겠다"가 그것이다. 일본 닛산자동차와 지난해 합작사를 설립한게 신호탄이다. 먀오 사장은 닛산과의 합작에 앞서 적자 투성이인 국유기업을 흑자기업으로 변신시키는 수완도 발휘했다. 그래서 중국언론은 그를 '구조조정의 가오서우(高手)'라고 극찬한다. 중국 중앙부처의 자동차 담당부서 공무원이었던 먀오웨이가 둥펑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건 지난 99년 3월. 그는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있던 종업원들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2년내 적자 상황을 반전 시키지 못하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 그는 먼저 부품을 생산하는 자회사에 손을 대 부품업체들이 다른 완성차업체에도 납품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본사에 의존해온 부품 자회사들이 자생능력을 갖추도록 한 것이다. 지난 2000년 둥펑은 20억위안(3천억원)의 이익을 냈다. 먀오 사장은 취임초 약속을 지킨 것이다. 한국 냉장고 시장에 독자브랜드로 진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중국 최대 종합가전업체 하이얼의 장루이민(張瑞敏ㆍ55) 회장. 지난 84년 하이얼이 파산위기를 맞았을 때 공장장으로 전격 투입된 그는 품질과 브랜드 위주로 회사 체질을 확 바꿨다. 그 결과 올해초 중국 업체로는 유일하게 월드브랜드랩(WBL)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백대 브랜드'에 올랐다. 중국 경제일보는 "하이얼이 지난해 8백억 위안(12조원)의 매출을 올렸다"며 "글로벌 5백대 기업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장 회장의 '브랜드 경영'은 저가로 승부를 걸어온 중국업계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으며, SVA 보다오 등과 같은 또 다른 브랜드기업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 최대 PC업체인 롄상그룹의 양위안칭(楊元慶ㆍ40) CEO는 '기술종속 탈피'를 외치는 경영인이다. 최근 중국 IT업계에 불고있는 '독자 표준화' 대열의 선두주자이다. 그는 지난해 홈네트워크 중국 독자표준인 ICI 준비조직 결성을 주도했다. TCL 콩카 하이신 등이 참여했으며 빠르면 올해 중 이를 적용한 제품이 출시될 전망이다. "중국 기술 주도의 표준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 2001년 롄상의 창업자 류촨즈로부터 CEO를 넘겨받은 그는 '서비스 기술 국제화'의 모토를 '첨단기술 서비스 국제화'로 바꾸며 기술중시 경영을 펼치고 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중국 IT기업중 하나인 야신커지의 딩젠(丁健ㆍ39) 회장은 가족기업의 천국인 중국에서 전문경영인을 전격 도입, 사업지배구조를 글로벌화한 경영인이다. 캘리포니아대 석사출신의 해귀파(海歸派)인 그는 94년 설립된 야신커지의 창업멤버다. 99년 CEO를 맡던 동료가 중국망통의 경영자로 자리를 옮긴 뒤 CTO(최고기술담당임원)에서 CEO로 변신, 주력사업을 SI(시스템통합)에서 기술집약적인 소프트웨어 개발로 바꿔 실적을 개선시켰다. 나스닥 상장을 성공시킨 그는 지난해 전문경영인에게 CEO 자리를 넘겨주고 미래 전략을 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 경제일보 계열 월간지 '중국기업가'의 류둥화(劉東華) 사장은 "20여년 전만해도 기업가라는 명칭은 생소했지만, 이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뒷받침하는 영웅이 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뒤 시장경제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온지 26년. 이제 중국에서도 국제급 CEO 스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