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2위 득표 가능성을 보이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장-마리 르펜 국민전선(FN) 당수는 모든 불법이민자 즉시 추방, 사형제 부활, 유로 통용 중단 및 프랑화 복귀 등을 주장하는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다. 그는 선거도중 상대후보를 폭행하는 등 잦은 돌출 행동과 과격 발언으로 프랑스정계의 주류로부터 백안시돼오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난 88년, 95년 대선 1차 투표에서 15%선의 지지율을 획득해 고정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의 상당수가 프랑스정계에서 르펜식 정치노선의 영향력이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며 이것이 프랑스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르펜은 지난 1928년 해안도시 모르비앙에서 태어나 파리 법과대학을 다녔으며 49년부터 3년 동안 극우학생단체인 '라 코르포'의 회장을 맡았다. 53년 알제리 사태와 57년 인도차이나 전쟁 때 참전한 경력이 있으며 72년 주변의 우파 동지들을 규합해 FN을 창당했다. 창당후 74년 대선에 처녀 출마했으나 1차 투표 지지율이 0.75%에 그쳤고 81년에는 후보등록에 필요한 후원자 서명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83년 지방의회선거, 84년 유럽의회 선거를 계기로 지지세력을 넓혀 88년대선에서 14.4%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했고 95년 대선에서도 15%의 지지를 얻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98년 르펜이 자신의 아내를 당권 후계자로 삼으려는 기도에 반발해 당내2인자인 브뤼노 메그레가 분당해 공화국운동연합(MNR)을 결성한 사건을 계기로 르펜은 정치적 종말의 길을 걷는 듯했다. FN은 9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지지율이 5.7%로 급락했으며 르펜 당수 자신은 이선거운동 도중 상대후보를 모욕하고 폭행한 죄로 기소돼 유럽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시장, 지방의원 등 피선 공직자 500인 이상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대선후보 지지서명을 받지 못해 한때 출마조차 불확실했었다. 그러나 르펜은 9.11테러 사태 이후의 국민 불안심리, 최근 몇년새 계속 증가하고 있는 범죄, 치안불안 등의 새로운 기류를 타고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투표 1개월전부터 지지율이 상승하기 시작해 투표 3일전에는 14%를 기록함으로써 리오넬 조스팽 총리를 불과 4-5% 포인트 차로 추격했다. 르펜은 1차 투표 직후 컴퓨터 예상 득표율에서 돌풍을 일으킴으로써 2차 투표진출 고지가 눈앞에 보인다고 했던 그의 주장을 사실로 확인시킨 셈이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