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건설업계 재벌인 장훙웨이 둥팡(東方)그룹 회장(張宏偉.46). 그는 "나의 사전에 '주저함(畏手畏脚·손과 발을 움직이기를 겁냄)'이라는 말은 없다"고 말한다. 일단 착수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장 회장은 포브스지 선정 2001년 중국 제24위 거부 기업인. 보유재산이 17억위안(1위안=약 1백55원)에 달한다. 그가 건설업계의 총아로 지목받는 것은 재산에 있지 않다. 맨주먹으로 시작, 건설 금융 유통 등의 기업을 거느린 거대 그룹 회장으로 성장하기까지의 피나는 노력에 그의 진면목이 있다. 그가 4세였던 지난 1958년. 장훙웨이 소년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의 한 교외 벽촌으로 내려갔다. 사상교육 명령을 받은 아버지가 가솔들을 이끌고 간 씨아방(下放.시골로 내려감) 길이었다. 그는 "추웠다는 것 밖에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며 "우리 가족은 고립무원의 그 곳에서 하루 하루를 어렵게 넘겨야 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그의 동네에 또 다른 씨아방 인사가 왔다. 건축사였다. 그와의 만남이 장훙웨이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장 회장은 그를 쫓아다니며 건축기술을 배웠다. 1978년 24세의 청년으로 성장한 장훙웨이는 하얼빈시로부터 작은 건축 사업을 하청받았고, 7백위안으로 이웃 농민 10여명을 사 공사를 시작했다. 그는 하얼빈 건설업계에서 유능한 기술자로 유명해졌고 지난 84년 둥팡건축을 설립했다. 중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구소련에 합작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둥팡건축은 헤이룽장성의 주요 건설사업을 맡으면서 승승장구, 90년대 초까지 연평균 50∼80%의 성장세를 이어갔다. 94년에는 건설업계 처음으로 상하이증시 상장에 성공했다. 지난 94년 그의 사업이 헤이룽장을 벗어나는 기회가 찾아온다. 발해만의 진저우(錦州)항 항만공사를 수주한 것. 둥팡은 완벽하게 이 공사를 수행했고 항만건설을 위해 설립한 진저우항우(錦州港務)를 지난 98년 상하이증시에 상장시켰다. 이때쯤 그는 이미 중국 민영기업의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사업 영역도 건설 무역 유통 교통 금융 등으로 확대했다. 장 회장은 눈을 해외로 돌렸다. 지난 97년9월 미국의 지방은행인 아시아페더럴(亞聯)은행 설립에 최대 주주자격으로 참여했다. 이 은행은 장 회장의 해외 비즈니스 통로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하얼빈에서 시작한 비즈니스를 선진 미국 시장에서 마치고 싶다"고 말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