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대기업간 밀월관계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세계경제의 두 축인 미국과 일본이 적대적 경쟁관계를 탈피하고 신기술
개발에서부터 생산및 판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동침에 들어가고
있다.

두 경제대국의 기업들은 이를통해 시장지배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세계
산업의 주도권을 완전 장악할 태세다.

최근 일본의 사쿠라연구소는 96년 1.4분기중 일본기업들의 합작투자건수는
모두 1백55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보다 26%나 늘어났고, 이중 대부분이
미국기업들과의 합작투자라고 밝혔다.

지난 93년부터 95년까지 3년동안 일본과 미국기업들간 합작투자건수는
불과 33%밖에 늘어나지 않았으나 올들어서는 크게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합작건수의 증가와 함께 과거처럼 변두리 사양사업분야에만 손을 잡는게
아니라 양측 모두 사운을 건 핵심사업분야에서도 동맹관계가 맺어지고 있다.

새로운 미-일기업간 밀월관계는 IBM과 도시바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두회사는 64메가D램과 256KD램의 양산에 필요한 초미세웨이퍼 가공기술을
공동개발하고 있고, 내년에는 이 기술의 뒷받침으로 미버지니아주에 합작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IBM과 도시바는 세계 노트북컴퓨터시장을 놓고 치열한 판매경쟁을
벌이면서도 노트북의 핵심기술인 액정표시장치(LCD) 생산에서는 제휴를
맺고 있다.

IBM은 현재 도시바 뿐만 아니라 1백여개 일본기업들과 제휴 또는 합작사업
을 전개, 지난해 일기업들과 공동으로 달성한 매출이 1백20억달러에 이른다.

이쯤되면 IBM은 미국의 간판기업으로만 간주되기에 어려울 정도다.

일본재계는 IBM을 아예 일본기업의 "게이레쓰"(계열)로 분류하고 있다.

일본기업과의 자본 또는 기술제휴로 이처럼 일기업의 "게이레츠"로 취급
되는 미국기업으로는 제너럴모터스(GM), 자동차부품회사인 TWA, 기계류제
조업체 케이터필러, 보잉 등 다양한 업종에 걸쳐 있다.

이처럼 게이레츠에 편입된 미국기업들은 일본식 기업구조의 특징인 업종의
다각화및 규모의 대형화로부터 상당한 이득을 얻고 있다는게 자체 평가다.

즉 든든한 자금원조세력이 배경으로 단일기업으로서는 엄두도 내기 힘든
첨단차세대 기술개발에 과감히 나설 수 있고, 신규유망시장 처녀진출에 따른
위험부담도 분산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어떻게 보면 미국기업들이 일본기업들의 후광을 업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일본기업들로서도 미기업과의 밀월관계에서 실보다는 득을 더욱
많이 누리고 있다.

우선 민간기업차원의 밀월은 미국정부의 통상예봉을 꺾는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는게 일재계의 분석이다.

또 완제품 제조업체들과 수출기업들은 고비용구조를 해결하는데도 미국
기업들과의 제휴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들어 GM의 자동차부품제조 자회사인 델파이오토모티브시스템스는
지난해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자동차메이커들과 하청생산계약을 통해 4억
달러어치의 부품을 공급, 일본내 최대 자동차부품공급업체로 부상했다.

델파이는 앞으로 5년내 일본자동차메이커에 공급하는 부품규모가 8억
달러선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로써 미-일간 자동차분쟁을 한층 완화시킬 뿐만 아니라 일자동차의 생산
비용을 낮추는데도 효과를 보고 있다는게 일자동차업계의 판단이다.

기업들간 미국과 일본의 국경이 허물어지는 추세 때문에 양국 정부간
통상분쟁도 변질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클린턴행정부는 일본정부에 필름시장의 각종 불공정거래관행을 철폐하도록
촉구하고 있으나 정작 당사자인 코닥필름은 일후지필름과 차세대 필름현상및
인화기술 개발을 위해 밀월관계를 강화하는 등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클린턴행정부가 일본에 가하는 통상압박이 커질수록 이에따른 미국기업들의
피해도 커질 수 밖에 없는 형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