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경영''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일본 다이와은행의 11억달러 손실사건 이후 1년도 채 안돼
스미토모상사가 또 한번 대형 경제스캔들을 일으키자 일본기업의 이미지가
"모범생"에서 졸지에 "문제아"로 전락하고 있는 것.

일본재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일본식 경영방식의 문제점과 도덕불감증"이
빚어낸 합작품으로 지적하고 있다.

장기적인 비젼이나 기업윤리보다는 당장 돈이 된다면 앞뒤 안가리고
달려드는 근시안적 태도가 "부실경영"만 키워 놓았다는 얘기다.

일본식 경영회의론 대두의 원인을 주로 기업윤리부재와 이에따른 관리체제
의 부실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다이와은행이나 스미토모상사 양사 모두 담당자에게만 전권을 맡긴채 통제
체제는 갖춰 놓지 않았다는 점이 병을 키운 화근이었다.

특히 대상이 투기성이 짙은 파생상품인데도 "크로스체크"의 기능이 전혀
없었다.

지난 10여년간 버블경제속에서 겉만 그럴듯한 부실성장을 계속해온 탓에
전문가가 부족해 "딜러"와 "관리자"가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건 모두 10여년이 넘도록 불법거래사실을 회사측이 까맣게 몰랐다는
점은 부실관리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투기성이 농후한 자리에는 반드시 "순환보직제"라는 방역주사를 놓는
서구기업들로서는 놀랄만한 일이다.

일본을 "졸부국"으로 몰아부치는 비판가들은 일본기업들이 이처럼 "기본"도
갖추지 않은채 화려한 외적성장만 이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그러나 웬만한 충격에는 쓰러지지 않는 "비상약"을 구비하고
있다.

영국 베어링스의 경우 금융손실로 회사자체가 남의 손에 넘어가는 비극을
맞은 반면 다이와나 스미토모는 끄덕 없다.

이번 사건으로 스미토모가 입은 손실은 10년간의 이익과 맞먹는 액수.

그러나 스미토모는 손실보전이 무난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같은 비상약의 성분은 "장부외 자산"과 "꼭두각시 주주".

지난해만 해도스미토모는 보유주식으로 약 40억달러, 토지임대등 부동산
사업으로 약 35억달러의 이익을 냈다.

일본기업들은 보유부동산이나 증권에 대해 싯가 대신 매입가격만 공표하기
때문에 차액만큼의 "완충지대"를 두게 된다.

다이와은행도 보유자산 매각을 통해 금융손실을 흡수했으며 스미토모도
특별손실로 계상, 당장이라도 적자경영을 면할 수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계열사끼리 상호출자로 얽혀져 있기 때문에 일본기업의 주주들은 사실상
"한가족"라는 점도 후유증을 쉽게 수습할 수 있는 주요요인이다.

스미토모의 대주주는 스미토모 신탁은행, 시미토모은행, 스미토모금속,
스미토모해상보험등 모두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이다.

문제가 생겨도 경영진에 책임을 묻기보다 조용해 사후수습에 협조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런 "비상약"이 당장의 통증만 씻어줄뿐, 속으로는
"위기관리능력"이라는 큰병만 키우는 아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관련,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기업들은 문제가 생겨도 주주들의
지지속에서 자산을 팔아 손실을 보존할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이런 악순환속에서 위기관리능력은 점점 무너져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제 일본기업은 "비합리와 밀실경영의 온상"이라는 악명을 갖게 됐다.

이미지 훼손만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일본기업의 국제적인 신뢰도 실추와 맞물리면서 5년여만에
겨우 되찾은 경제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삼종의 신"(종신고용제, 회사내 노조, 연공서열)으로까지 칭송받으며
일본경제의 기적을 일궈냈던 일본기업의 경영방식이 이제 신문컬럼의
대표적인 "성공담"에서 "실패담" 코너로 자리를 바꿔야 할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