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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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 커진 코스닥 대표주자들이 유가증권 시장으로 하나둘 떠나고 있다.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권에 포진한 대형주의 줄이탈로 시장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이들 이미 이전 상장했거나 계획 중인 기업 대부분이 한국거래소가 지난해 말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에 포함된 종목으로 나타났다. 숱한 노력에도 여전히 코스닥 시장이 코스피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되는 오랜 관행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엘앤에프포스코DX는 유가증권 시장으로의 이전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엘앤에프는 지난 28일 이전상장을 공식화했고, 포스코DX는 같은달 23일 공시를 통해 이전상장 소식을 밝혔다. 올 상반기 비에이치와 NICE신용평가, SK오션플랜트는 이미 코스피로 이전상장했다.

올해 엘앤에프와 포스코DX가 유가증권 시장으로 이전상장하면 올해에만 총 5개 기업이 코스피로 자리를 옮긴다. 지난 10년간(2012~2022년) 11개사가 이전상장했는데, 이에 절반 수준이 코스피로 이전하는 것이다.

코스닥 우량 기업이 유가증권 시장으로 이전을 추진하는 이유는 기업 이미지 개선, 대외 신인도 제고 차원이다. 공매도를 막기 위함도 있다.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는 코스피200, 코스닥150 편입 종목에 한해 부분적으로 허용된다. 코스닥150 종목이 코스피로 이전하면 코스피200 편입 전까진 공매도가 불가능하다. NICE평가정보, 비에이치, SK오션플랜트 모두 코스닥150 구성 종목이었다. 지금은 코스피로 둥지를 옮겼지만, 코스피200에 포함되기 전까진 공매도가 제한된다.

문제는 엘앤에프와 포스코DX 모두 코스닥 시총 각각 4위, 5위 기업으로 대형주란 점이다. 이전상장할 경우 코스닥 시장의 성장 침체가 불가피하다. 더군다나 코스닥 시총 3위인 셀트리온헬스케어도 연내 셀트리온으로 흡수합병되면서 코스닥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순식간에 시총 3~5위 코스닥 상장사가 시장을 떠나게 된 셈이다. 이들 3개 기업의 시총 규모는 전날 종가 기준 27조원에 달한다. 전체 코스닥 시총 합(443조5000억원)의 6%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장에서는 또다른 상위주인 에코프로비엠이나 에코프로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해당회사는 이전상장을 부인하고 있지만, 그만큼 코스닥 시총 상위주들의 이탈은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거래소는 그간 코스닥 시장 저평가 해소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11월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 제도가 대표적이다.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는 코스피 상장사 못지않게 시총 규모가 큰 코스닥 우등 기업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받는 현상을 극복해 코스닥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단 취지에서 시작했다. 코스닥 이미지 제고를 통해 활발한 투자를 이끌어 내실있는 기업을 코스닥에 잔류하게 하려는 측면도 있었다.

다만 이같은 노력이 진정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출범 당시 51개였던 편입 종목 중 이미 2개 종목(NICE평가정보·비에이치)이 코스피로 이전했고, 조만간 엘앤에프·포스코DX까지 2개 업체가 추가로 코스닥을 나갈 예정이다. 셀트리온헬스케어까지 고려하면 상장사 3곳이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에서 빠진다.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코스닥 저평가가 해소되려면 시장의 성격 자체가 바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가증권 시장이 제조업 등 전통 산업을 벌이는 기업 중심이라면, 코스닥 시장은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로 구성된 시장의 성격을 띠어야 한단 얘기다. 거래소를 비롯한 금융당국이 기술특례상장 제도의 문턱을 지속적으로 낮추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란 분석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말 '기술특례상장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기업의 기술 평가 과정을 간소화하고, 상장 심사 기간을 단축해 잠재력이 높은 기업들의 상장 부담을 줄이겠단 게 해당 개선안의 골자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중심의 코스닥 시장에서 저평가가 해결되기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코스닥협회 관계자는 "나스닥은 칼 같다. 기관 중심의 매매가 많기 때문에 잘못하면 상장 폐지되지만, 국내 증시는 개인투자자 중심인 만큼 한 번 상장하면 부진한 경영을 지속해도 시장에서 퇴출시키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방만한 기업들이 시장에 잔존하게 되고, 저평가가 해소되기 어려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