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5일 차기 금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향후 금융정책 방향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고 후보자가 지난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유일하게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의견을 낸 ‘매파(통화긴축 옹호)’로 분류되는 만큼 1800조원(6월 말 현재 추정치)에 달하는 가계부채 관리 이슈에 집중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또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암호화폐(가상자산) 문제에 대해서도 “이를 화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각국 중앙은행과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데다 통화 완화에 따른 자산 버블이 근본 원인이라는 시각이어서 그동안 제도권 편입에 소극적이었던 은성수 현 위원장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물경기 위축보다 금융안전성 우선”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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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후보자는 이날 청와대 인선 발표가 나온 뒤 언론에 밝힌 소감문에서 “가계부채, 자산가격 변동 등 경제·금융 위험 요인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통위원으로서 이미 가계부채와 부동산 등 자산가격 급등에 대해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소신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지난 3일 공개된 14차 금통위(7월 15일) 의사록에 따르면 고 후보자는 “지난해 초 코로나19 이후 지속돼온 완화적 통화정책이 급격한 실물경제 위축을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자산시장 가격 상승도 동시에 초래했다”며 “가계부채 증가세가 계속되면 과도한 부담으로 금리 정상화가 불가능해지는 소위 ‘부채 함정’에 빠질 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 후보자는 지금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제2의 금융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고 후보자는 지난달 금통위에서 “현시점에서는 (실물경기 위축보다) 금융 안정을 확고히 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서민과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의 부담 증대는 특정 부문에 선별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재정정책을 통해 풀어나가는 게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당초 오는 26일 기준금리 인상이 유력하게 점쳐졌던 금통위에선 이번 고 후보자의 이탈로 스케줄이 꼬이게 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고 후보자가 빠지면서 이달 금통위가 6인 체제로 열릴 가능성이 높다”며 “이주열 총재를 포함한 금통위원 4인이 금리 인상 쪽에 무게추를 두고 있지만 최근 코로나 델타변이 확산 등을 이유로 한 차례 더 동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임기 말 안정적인 금융정책 운영 기대”

문재인 정부 임기 만료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고 후보자의 전격적인 등판은 안정적인 금융정책 운영의 필요성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고 후보자는 금융위에서 금융정책국장, 금융서비스국장, 사무처장, 상임위원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데다 온화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갈등과 이견을 조정하는 능력이 탁월해 안정적인 금융 수장으로서 리더십이 기대된다는 게 청와대 측 설명이다.

고 후보자도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간 관계가 다소 불편했지만 앞으로는 제 역할을 각각 수행하면서 (정은보 신임 금감원장과도) 호흡을 잘 맞출 것”이라며 “한은에서도 이 총재와 호흡이 잘 맞았다”고 전했다.

“암호화폐는 화폐 아냐” 제도화엔 ‘신중’

올 상반기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던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기존 금융위 정책 방향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한은도 최근 디지털화폐(CBDC) 실험에 나서긴 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비트코인 등 기존 민간 암호화폐를 견제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며 “고 후보자가 코인시장으로 자금이 몰려드는 현상에 대해 신용 완화에 따른 자산 버블을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만큼 암호화폐를 투자자산으로 법제화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

△1962년 서울 출생
△경복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아메리칸대 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28회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금융정책국장, 사무처장, 상임위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이호기/김익환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