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퇴직연금을 확정기여(DC)형으로 전환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회사가 알아서 굴려 정해진 퇴직금을 주는 확정급여(DB)형과 달리 DC형은 본인이 직접 퇴직금을 어디에 투자할지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A씨는 바쁜 직장 생활 중에 퇴직연금 운용에 신경 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한 펀드에 가입하면 그 안에서 자산을 배분하고 주기적으로 비중도 조절해주는 타깃데이트펀드(TDF·target date fund)를 골랐다.
판 커지는 TDF 시장… 출시 2년 만에 1兆 '눈앞'
A씨 같은 직장인이 많아지면서 연금상품인 TDF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작년 3월만 해도 국내 자산운용사가 내놓은 전체 TDF펀드 설정액은 1406억원에 불과했지만 1년 만에 9183억원까지 늘어 6배 이상으로 덩치를 불렸다. 올 들어서만 2531억원이 새로 들어왔다.

◆1년 만에 설정액 6배 이상으로

TDF가 인기를 끄는 건 퇴직연금 투자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TDF는 투자자의 은퇴 시점을 고려해 생애주기별로 자산을 배분한다. 은퇴가 한참 남은 청년기에는 성장주나 고수익 채권 등에 자산을 집중하고, 은퇴시기가 가까워질수록 배당주나 국·공채 비중을 높여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식이다. 미국에서는 1조2000억달러(약 1279조원)어치가 판매됐을 정도로 대중적인 상품이다.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은 29일 ‘한국투자 TDF알아서 펀드 출시 1주년 기념 설명회’에서 “TDF는 노후자금을 위해 최대 50년간 붓는 ‘큰 그릇’격의 장기투자 상품”이라며 “여유자금을 불리는 기존 주식형이나 채권형 펀드와 달리 꼭 필요한 노후자금을 굴리는 필수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각 자산운용사 펀드명에는 2020, 2025, 2030, 2035, 2040, 2045 같은 숫자가 붙어 있다. 은퇴 예상 시기를 의미하는 숫자다. 예를 들어 가입자가 은퇴까지 10여 년을 앞둔 50대 직장인이라면 펀드명에 2030이 들어 있는 TDF에 가입하면 된다. 보통은 태어난 연도에 60을 더하면 간편하다. 실제 은퇴 시점과 상관없이 펀드를 선택할 수도 있다.

◆생애주기 따라 자산 배분

국내에선 7개 운용사가 TDF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대부분 TDF 운용 경험이 있는 외국 운용사와 손잡고 한국인의 생애주기에 맞춰 운용하는 상품을 내놨다. 삼성자산운용은 미국 캐피털그룹, 한국투자신탁운용은 미국 티로프라이스, KB자산운용은 미국 뱅가드, 한화자산운용은 미국 JP모간과 손잡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자체 역량으로 펀드를 운용한다.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은 삼성자산운용의 ‘삼성 한국형 TDF’다. 전체 TDF 펀드 자금의 43%인 4001억원이 삼성자산운용 상품에 몰렸다. 오원석 삼성자산운용 연금사업부 팀장은 “삼성 한국형 TDF는 한국인의 생애주기에 맞춰 자산배분프로그램을 설정한 국내 첫 상품”이라며 “다양한 글로벌 자산에 투자하기 때문에 최근 증시 조정세에도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2045년 은퇴자들이 가입하는 ‘삼성 한국형 TDF 2045’는 최근 1년간 10.73%, 6개월 동안 3.57% 수익을 냈다. 국내 TDF 펀드 가운데 설정액이 가장 큰 상품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 TDF 알아서 2045’는 최근 1년 동안 11.04%, 3개월간 0.2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TDF가 퇴직연금 제도 때문에 원래 취지대로 운용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퇴직연금 제도는 주식형 펀드는 70%까지만 담도록 하고 있다. 적어도 30% 이상은 채권형 펀드 등 저위험 상품을 담아야 한다.

주식형 펀드로 분류되는 TDF에는 전체 자산의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TDF 펀드 내에서 안전자산에 일부 투자하고 있어도, 나머지 자산 30%를 추가로 안전자산에 넣어야 한다. 한 자산운용사 퇴직연금 담당 팀장은 “운용사들이 자산배분상품을 내놨지만 제도 때문에 완벽한 자산 배분이 어렵다”며 “TDF와 같은 자산배분형 상품은 70%룰을 예외적으로 적용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타깃데이트펀드(TDF)

Taget Date Fund. 투자자의 은퇴 시점을 고려해 자산을 배분해주는 펀드. 청년기에는 성장주와 고수익 채권 등에 자산을 집중하고, 은퇴시기가 가까워질수록 국·공채 비중을 높여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식이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