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저금리 시대에 개인 투자자와 은퇴자들의 기대 수익을 맞출 수 있는 것은 주식 채권 등 금융투자상품밖에 없다. 지나치게 위축돼 있는 자본시장을 살리려면 규제 완화가 필수다.”

전문가들은 시중금리가 연 2~3%로 떨어졌는데도 은행 예금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금운용 관행에 대해 우려했다. 미국 호주 독일 등 자본 선진국처럼 다변화된 투자문화가 뿌리를 내리려면 금융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18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연 ‘자본시장을 살리는 방안’ 좌담회 자리에서다. 토론에는 박경서 고려대 경영대 교수, 허창수 서울시립대 경영대 교수, 이정수 금융투자협회 증권서비스본부장, 서태종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이 참석했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이 사회를 봤다.

전문가들은 지난 18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자본시장을 살리려면 정부의 규제완화와 금융투자업계의 경쟁력 강화 방안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이정수 금융투자협회 본부장, 박경서 고려대 교수, 허창수 서울시립대 교수,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서태종 금융위원회 국장.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전문가들은 지난 18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자본시장을 살리려면 정부의 규제완화와 금융투자업계의 경쟁력 강화 방안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이정수 금융투자협회 본부장, 박경서 고려대 교수, 허창수 서울시립대 교수,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서태종 금융위원회 국장.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김형태 원장(사회)=저성장, 저금리, 고령화는 자본시장에 도전이자 기회다. 우리보다 먼저 저금리 환경을 맞은 미국 유럽 등은 자본시장을 적극 활용한 경험이 있다.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허창수 교수=바람직한 자본시장의 모습은 주식 채권 가격이 오르는 게 아니다.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주가가 오르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지나치게 많다. 시장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박경서 교수=구조적으로 위험 대비 수익성이 낮았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 20년간 한·미 증시를 분석해 봤는데 국내 증시의 연평균 수익률은 9.05%였고, 표준편차(위험률)는 32.9%였다. 미국 S&P500 지수는 같은 기간 수익률이 약 10%, 표준편차가 21%였다. 한국 증시의 수익률이 미국보다 떨어지는 데도 훨씬 위험하다는 방증이다. 원인은 두 가지다. 우선 우리나라에선 자동차 조선 화학 등 고정비용이 높은 산업 중심이다. 경기에 민감하게 움직였다. 또 하나는 낮은 배당성향이다. 국내의 과거 시가 배당률을 평균 내 보면 연 1.7%였다. 3.5%인 미국의 딱 절반 수준이다. 배당을 많이 지급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장기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사회=금융투자업계도 자성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글로벌 재테크 리포트] "ELS·ELD 등 年5% 수익 내는 중위험 상품 더 다양해져야"
▷이정수 본부장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매매중개(브로커리지) 위주이다 보니 양질의 투자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불완전판매 이슈가 불거졌고 ‘투자=투기’라는 부정적인 인식도 생겨났다. 정부 역시 금융수수료만 낮춰주면 소비자 보호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박 교수=국내 금융사들이 외국 상품을 많이 들여오는 원인 중 첫 번째가 자체적으로 상품을 개발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60여개에 달하는 증권사들이 도토리 키 재기식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적어도 상위 4개 증권사가 합해질 정도가 돼야 외국과 경쟁할 만하다. 증권사가 시스템 리스크를 일으키는 경우는 미국의 투자은행(IB) 정도다. 국내 증권사가 시스템 리스크를 일으킬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도 규제만 많다.

▷사회=어떻게 해야 자본시장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허 교수=장기 분산 투자가 은행 예금보다 수익성 면에서 낫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깨끗이 증명된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버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큰 손실을 봤고 일종의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투자상품이 더 많이 나와줘야 한다.

▷이 본부장=변동성을 줄이는 장치가 나와야 장기 투자가 가능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기관투자가의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의 장기투자성 자금도 많이 유치해야 한다. 은행과 금융투자업계의 차별적인 규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투자회사는 은행과 달리 외국환 업무를 취급할 때 제한이 지나치게 많다. 상품 헤지(위험회피)를 해야 하는데 사전에 신고해야 할 정도다.

▷박 교수=나이가 들면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는 게 기본이다. 어느 정도 수익을 내면서도 안전하다는 믿음을 줘야 주식 등 위험자산에 돈을 넣을 것이다. 예컨대 주택연금만 놓고 봐도 고령화 추세에 맞는 훌륭한 상품이다. 주가연계증권(ELS) 주가연계예금(ELD) 등 연간 5% 안팎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중위험 투자상품이 다양해져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해외 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의 운용 능력 제고가 절실하다.

▷허 교수=금융수수료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시중금리가 연 12%대일 때 수수료가 1%포인트 정도였다면, 금리가 3%를 밑도는 지금도 1%포인트 가까운 수수료를 떼고 있다. 금융계 전체의 얘기지만, 연금상품만 놓고 봐도 연 3.2% 이자를 주면서 수수료로 0.8%포인트를 가져간다. 금융투자업계가 수수료를 모두 제외하고 순수익률만 공시해야 한다고 본다. 소비자들이 화를 내는 이유가 ‘수익률이 좋은 줄 알았는데 막상 펀드를 환매해보니 적더라’는 점이다.

▷서태종 국장=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제2금융권이 비대화됐었다. 지금은 반대로 은행으로 자금이 쏠려 있다.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릴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투자심리가 과도하게 보수화됐다. 다른 한편으로 다양한 투자상품의 특성과 장단점을 자문해주고 판매를 알선하는 판매채널이 활성화돼야 한다. 독립투자자문사 등 다양한 형태의 판매 채널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내년 1월 ‘펀드 슈퍼마켓’을 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회=퇴직연금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에선 퇴직연금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본부장=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이 매년 20%씩 늘고 있다. 지금은 68조원 정도다. 그런데 안전자산, 또 단기 투자 위주다. 주식 등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은 6%에 불과하다. 운용사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부 규제도 문제다. 주식형펀드의 투자 비중을 40%로 제한해 놨다. 선진국 중에서 적립금 운용규제를 가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기업과 운용회사가 1 대 1로 계약하는 행태도 개선해야 한다. 호주는 기금형으로 운용하면서 복수의 기관이 경쟁한다. 운용보수를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익률과 운용 방식에 따라 다양한 상품이 나올 수 있다.

▷허 교수=퇴직연금을 굴리려면 결국 해외로 나가야 한다. 지금도 자본잉여국인데도 해외 전문인력이 턱없이 적다. 최소 3~5년 뒤의 글로벌 경제를 예측하고 최적의 자산배분을 할 만한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증권사만 해도 해외에서 조금 손해 보면 바로 철수한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한꺼번에 해외시장에서 철수했던 게 대표적인 예다.

정리=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

○특별취재팀=팀장 조재길 증권부 차장(호주), 안상미(독일)·황정수(일본)·조귀동(홍콩) 증권부 기자/유창재 뉴욕특파원

■ 글 싣는 순서

① 대체투자·월지급식 눈돌린 美·日
② 홍콩은 지금 채권형 펀드 ‘붐’
③ 주식투자형 연금의 나라 호주
④ 중위험·중수익 열풍 부는 독일
⑤ <끝> ‘우리는 어떻게’… 전문가 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