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 60대 초반 자산가 L씨는 보유하고 있던 상가 건물 1채와 아파트 2채를 모두 정리했다. 국내 부동산 시장이 되살아나기 어렵다고 본 데다 은퇴 생활에 맞게 자산을 재구성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L씨는 한 증권사를 찾아가 싱가포르 등의 대형 주상복합아파트나 토지를 물색해 달라고 부탁했다. 외국인이 많아 임대 수요가 풍부한 데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자산가치 하락 여지가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해외에서 노후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고액자산가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자산가들의 해외 부동산 매입은 2008년 관련 규제가 풀리면서 잠깐 붐이 일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미국이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의 건물과 토지를 물색하는 고액자산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승철 동양증권 PB전략팀 부동산 컨설턴트는 “미국이나 동남아 등에서 20억~30억원 정도를 투자해 대형 주상복합아파트나 고급 주택을 구매한 뒤 세를 주겠다며 매물을 보고 다니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컨설턴트는 “이전 부동산 투자가 주로 유학생 자녀를 둔 사업가나 전문직 종사자가 중소형 아파트를 구입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본격적인 상업적 목적의 투자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미국 부동산 투자다. 뉴욕 등 동북부 대도시 중심가 아파트 위주에서 벗어나 플로리다주 올랜도, 애리조나주 피닉스 같은 휴양지의 고급 주택을 알아보는 자산가가 늘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고급 주택을 매입해 외국인 주재원 등을 대상으로 세를 주려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 컨설턴트는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근방 면세점 상가가 신규 분양됐을 때 몇 명이 실제로 투자했다”며 “최근 동남아 경제가 호황이다보니 임대용 아파트, 상가, 토지 등 다양한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산가들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이유는 국내 부동산보다 수익률이 높은 데다 양도세, 보유세 등 관련 세금이 상대적으로 가볍기 때문이다. 한 은행계 PB는 “국내 세금 부담이 늘면서 해외로 자산을 이전하고 싶어하는 자산가가 많아진 것도 해외 부동산이 인기 있는 이유”라고 귀띔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