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위기 재연 가능성은 낮아"

최근 동유럽발 금융위기 우려와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원ㆍ달러 환율이 1,470원대로 급등하자 1,500원 돌파도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증권가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환율 상승은 작년처럼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 손실 및 환차손 확대에 따른 기업 실적 악화와 금융기관 부실, 수입물가 부담 증대 등을 야기해 증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불안이 올 2분기 이후 점차 완화될 전망이고, 원화 가치도 `나홀로 약세'를 보이는 게 아니어서 지난해 10월과 같은 금융위기는 초래되진 않을 것이란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예상이다.

◇ "1,500원 돌파 시간문제" = 작년 말 1,295원을 기록하며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던 원·달러 환율이 지난 11일 1,400원을 넘어선 이후 급등세를 타고 있어 동유럽발 금융불안이 확산되면 조만간 1,500원선도 돌파할 것으로 증권가는 조심스레 전망한다.

원·달러 환율은 19일 오후 1시42분 현재 전날보다 7.80원 오른 1,475.20원을 기록하고 있다.

NH투자증권 김종수 연구원은 "최근 환율 급등이 내부적 악재보다 글로벌 금융 불안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며 "작년 4분기처럼 세계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본 이탈이 확대되면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확산돼 환율이 1,500원선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 박형중 연구원도 "안정세를 찾아가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다시 상승 기조로 돌아선 것은 동유럽의 금융불안과 국내 외화자금 사정 악화 때문"이라며 "환율이 조만간 1,500원 선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대신증권 최재식 연구원은 "국내적으로 3월에 상대적으로 많은 외화채권 만기가 집중돼 외화 수급 사정이 좋지 않다"며 "최근 국제적으로도 금값 상승 등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뚜렷해 환율이 1,500원을 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의 달러화 수급 불안도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다른 달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외화채권 만기가 3월에 집중돼 있고, 외국인 주식배당 수요도 있어 달러화 수급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투자증권 박 연구원은 "3월에 만기가 되는 외화표시 채권은 약 174억달러"라며 "3월 들어 외국인 주식배당과 동유럽 신흥국 금융불안 영향으로 외국인 주식자금 이탈 가능성이 큰 점 등을 고려하면 달러화 자금 수요는 300억달러를 웃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과 유럽이 경기부양을 위해 올해 1분기에 5천억달러 규모의 국채 발행으로 달러 끌어모으기에 나서면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이 달러 가뭄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원ㆍ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돌파하더라도 오래 머물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우증권 고유선 연구원은 "동유럽 디폴트 리스크 등 외부 요인으로 환율이 1,500원선을 넘을 가능성은 있다"며 "하지만 이는 국내 경제 펀더멘털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1,500원선 위에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NH투자증권 김 연구원도 최근 환율 급등이 글로벌 금융불안에서 기인하는 만큼 당분간 고공행진은 불가피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국내 외환시장 수급여건이 개선될 것이기 때문에 작년과 같은 원화의 `나홀로 약세'는 전개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 증시엔 악영향 점쳐 = 환율 상승으로 국내 증시는 더욱 어려움이 빠질 것이라는 분석이 증권가에선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론적으로 환율 상승은 국내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수출에 도움을 주지만 최근 같은 글로벌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이 같은 `환율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대신증권 최 연구원은 "세계적 금융불안 속에서 환율 상승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환율 상승이 오히려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을 가중시켜 증시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유진투자증권 정용택 경제분석팀장은 "환율이 기본적으로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호재와 악재가 혼재한다"며 "그러나 환율 상승이 세계경제 및 외환시장 위기의 `지표' 역할을 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증시에 부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봉준 기자 j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