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호전 기미를 보이던 외화유동성 상황이 다시 악화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은행 건전성에 대한 우려와 전 세계적인 금융보호주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5일 "최근 다보스포럼에서 글로벌 금융 · 경제위기 책임이 미국뿐 아니라 수출 위주의 아시아 국가들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외화유동성 문제가 다시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지난해 11월과 12월 은행들의 외화유동성이 다소 좋아졌지만 그 이후 세계경기 위축에 따른 수출 감소로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계가 해외에서 달러를 조달할 때 가산금리의 기준이 되는 5년 만기 외평채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스프레드는 올해 초 2.7%포인트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선 다시 3.3~3.4%포인트 수준으로 올라온 상태다. CDS 스프레드가 높아진다는 것은 부도 위험을 그만큼 높게 본다는 의미며 채권 발행 등의 경우 조달금리가 높아지게 된다.

이 여파로 국내 한 시중은행은 이달 달러표시 채권을 발행하려 했으나 연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각각 20억달러의 외화표시 채권을 발행한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도 올해 상반기 중 이 같은 규모의 채권 발행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한국 호주 캐나다 등 13개국과 통화 스와프 계약을 연장한 것도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안병찬 한은 국제국장은 "전 세계적으로 달러화 자금 조달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금융보호주의가 대두되고 있어 국내 은행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들어 자국 은행에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해 준 주요국 정부는 구제금융 조건으로 자국 내 대출 확대를 내세우고 있다. 자국 자본이 외국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이런 양상이 심해지면 국내 은행으로선 달러 차입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으로 은행들이 금융시스템이 취약한 이머징마켓 국가들에서 철수하고 있다"며 "이는 금융보호주의의 첫 단계로 궁극적으로 과거에 경험했던 보호무역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요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규모의 채권 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점도 국내 은행들로선 악재다. 올해 국내에서 갚아야 할 외화 채무는 시중은행만 400억달러이고 국책은행 및 시중은행의 해외 점포까지 합치면 8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박준동/정재형/유승호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