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주)와 SK텔레콤의 경영권 문제로까지 비화된 영국계 크레스트증권의 SK(주) 주식매집 사건을 놓고 진보 진영의 시민단체간에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자본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으며 투명성과 책임성을 기준으로 기업을 바라봐야 한다'는 참여연대측 주장에 대해 진보적 학자들로 구성된 대안연대회의가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대안연대측은 금융 개방으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된 한국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의 재벌정책이 재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대안연대는 미국식 주주가치 이론에 기반한 참여연대의 정책에 반대하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2001년 4월 결성됐다. ◆ 논란의 도마에 오른 '자본의 국적' 장하성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고려대 교수)은 15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근 SK 사태에 대해 "누가 됐든 투명하고 책임지는 경영을 하는게 중요하다. 경영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지나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최태원 SK 회장은 0.18%의 지분을 갖고 있는 소액주주에 불과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한성대 교수)도 최근 한 토론회에서 "독점자본은 모두 같다. 국적은 없다. 재벌개혁의 가시적 성과는 발전적 해체나 분열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개혁의 지향점이 재벌 해체에 있다는 점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대안연대측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해당 국가의 국적이 있는 기업은 사회 국가적 요구에 일정한 기여를 하지만 외국 기업은 그럴 필요가 없다. 외국인이 한국의 재벌을 인수할 경우 이같은 사회.국가적 요구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SK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의 재벌들이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는 취약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안연대 멤버인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신문 기고문을 통해 "자본에 국적이 없다는 말은 강대국 자본들이 지어낸 신화"라며 "재벌들이 철저한 반성과 사회적 통제를 받아들인다는 전제하에 재벌의 지배권을 안정시켜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해체의 대상이냐 발전의 동력이냐 장하성 교수는 지난 9일 '동북아경제중심지' 국제포럼에서 "경제개혁의 핵심은 재벌 개혁이며 그 중에서도 잘못된 소유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하성 교수는 특히 "소액주주에 불과한 오너들이 불법을 불사하고 경영권을 김정일처럼 대물림하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들은 "과거 외환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재벌들에 대한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SK뿐 아니라 나머지 대기업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대안연대측은 오히려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고 초국적 자본의 공격 대상이 되어버린 한국 국적의 재벌에 대해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과제라는 입장이다. 대안연대측 학자들은 '재벌은 개혁의 대상인 동시에 국가 발전의 동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승일 정책위원은 "대기업에 대한 민족적 소유 통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재벌에 안정적 대주주로서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찬근 교수도 "실제 한국의 경제상황에서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한 투자를 할 수 있는 기업은 재벌밖에 없는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 대안으로서의 지주회사 참여연대 김상조 교수는 "지주회사 제도가 실현 가능한 모델이지만 한국에서는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주회사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만한 기업이 없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측은 최근 지주회사 제한 완화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대안연대측은 그러나 한국의 국적기업을 보호하며 투명한 경영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것은 지주회사로의 전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유럽계 그룹들이 지주회사를 통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 이찬근 교수는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담보로 지주회사 제한을 완화해 주면서 전환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개혁에 대해서도 시각차 장하성 교수는 최근 정부의 '개혁 속도조절론'에 대해 "경제성장과 발전을 위해 개혁을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대안연대 이찬근 교수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다양한 재벌개혁 방안을 동시에 밀어붙이면 한국의 어떤 재벌도 지배권을 지킬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안연대측은 또 은행의 대기업 지분 소유와 이사파견 등 견제장치를 갖추는 것을 조건으로 오너 경영의 장점인 기업가정신을 살릴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요소라는 입장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