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종영한 MBC TV 수목드라마 'W'의 성공은 송재정 작가에게 크게 빚졌다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웹툰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좀처럼 보지 못한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송 작가는 2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W'는 제 창작품이 아니다"라면서 "제가 씨는 뿌렸지만 스스로 자라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강철이 죽는 거로 끝났어도 괜찮았을 것"

송 작가는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 '제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에서 'W' 모티브를 얻었다.

입을 벌린 채 아들을 삼키는 로마의 신 사투르누스를 담은 기괴한 그림이다.

'W'의 피조물과 창조주, 즉 웹툰 주인공 강철(이종석 분)과 만화가 오성무(김의성)의 대결 이야기는 여기서 출발했다.

송 작가는 순수미술을 하는 광기 어린 화가 이야기를 구상했으나, 그림 자체를 영상으로 구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결국 만화가로 주인공을 바꿨다.

1980년대 인기를 누린 노르웨이 그룹 아하(A-ha)의 '테이크 온 미' 뮤직비디오에서 여주인공이 만화 속으로 들어가는 설정도 이야기 구상에 영향을 미쳤다.

오성무의 딸이자 현실 속 의사인 오연주(한효주)가 웹툰으로 들어가 강철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까지 더한 'W'는 그렇게 탄생했다.

창작자와 그 대상의 관계는 부모·자식과 비슷하다는 게 송 작가의 설명이다.

"제가 캐릭터에 히스토리를 주면 (이야기가) 자기 마음대로 굴러가는 순간이 있어요.

부모가 자식을 키우다가 장가보내고 시집 보내는 것처럼, 작품에서도 그러다가 어느 순간 (캐릭터를) 떼어내야 할 때가 오고요."

송 작가는 결말에 대해서는 "저는 결말 자체에 관심을 두는 유형은 아니다"라면서 "강철이 죽는 거로 끝났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시청자의 불만을 샀던 오성무의 죽음에 대해서는 "오성무의 죽음은 저의 죽음"이라면서 "캐릭터를 죽였을 때 시청자로부터 욕도 먹지만, 저도 나름대로 제 '싹'을 잘라냈을 때의 고통이 있다"고 토로했다.

◇ 시공간·차원 이동 이유…"평범한 사람의 특별한 경험 가능"

송 작가는 tvN '인현왕후의 남자'(2012)와 '나인:아홉 번째 시간 여행'(2013)에서 시공간을 거스르는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바 있다.

이번에는 동시간이되 차원을 달리하는 이야기를 택한 이유에 대해 송 작가는 "남들이 안 하는 것, 희한한 것, 특이한 것을 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MBC TV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등 인기 시트콤 작가였던 송 작가의 이력과도 닿아 있다.

"제가 시트콤을 그만두고 드라마를 시작한 것은 시트콤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트콤이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장르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사랑 이야기 같은 건 시트콤에서도 할 수 있잖아요.

특히 차원 이동을 하면 굉장히 극적인 상황 전개가 가능해져요.

현실에서는 첩보원이나 군인 정도가 가능할 위험한 일을 일반인이 경험할 수 있는 거죠."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특별한 일을 겪는 일에는 흥미를 못 느끼고, 평범한 사람이 특별한 일을 느끼는 게 재미있다"고 말하는 송 작가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그는 또 다른 차원 이동 드라마를 쓸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아이디어는 있지만 당장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너무 어두운 이야기라 실제로 방송할 수 있을지는 저도 의문"이라고 답해 궁금증을 키웠다.

송 작가는 '나인'의 박선우와 달리 'W'의 강철에게는 '자유 의지'를 부여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나인'에서는 박선우가 죽음으로서 운명에 굴복하는 것처럼 갔죠. 그때는 인생의 쓴맛을 말하려고 했다면, 이번에는 더 강한 의지를 갖춘 캐릭터가 나왔으면 했어요. 작가인 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강한 의지요."

자신이 오성무의 창조물이라는 걸 알고 절망한 강철이 그를 쏜 후 죽음을 택했을 때만 해도 박선우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되살아난 강철이 웹툰 속 세상을 종속된 세계가 아니라 현실과 대응한 세계라고 인지한 순간부터 두 개의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방송 말미 불친절한 이야기 전개를 사과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던 송 작가는 "향, 부적처럼 이동 매개체가 있었던 전작과 달리 'W'는 주인공의 인지, 즉 자유 의지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달랐다"면서 "그걸 영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시청자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걸 예상 못 한 건 제 실수"라고 해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airan@yna.co.kr